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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땅굴
2014.11.20 17:10

땅굴 전쟁의 기나긴 역사(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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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전쟁의 긴 역사[2014년 8월 26일 기고(출처 클릭!), 아더 헤르만: 1961년 설립된 국제 안보 정치, 허드슨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아더 헤르만(Arther Herman)은 죤 홉킨스 대학(1985년, 박사)을 졸업했으며, 문화 사회 경제 방어 전략 전문가로서 뉴욕 타임즈에서 선정한 베스트셀러 어떻게 스코틀렌드인들은 현대 세계를 만들었나(2001년)과 퓰리쳐 상을 수상한 파이널리스트 간디와 쳐칠(2008년)를 포함한 일곱 권의 저자이기도 하다.]

땅굴 전쟁의 기나긴 역사 라는 자신의 기고문에서 아더 헤르만 박사는 땅굴 전쟁사에서 현재 도드라지는 땅굴전쟁터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와 남북한이며 땅굴공격군은 하마스와 북괴군이라고 하면서 하마스 군을 향한 북괴군의 군수지원을 전제한다. 북괴 땅굴군단의 도움없이는 하마스가 최소한도 31 개의 땅굴들을 정교하게 굴착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시멘크 콩크리트로 보호되는 위 아래 벽을 지닌 하마스 땅굴들 중의 하나를 보여준다. 땅굴들에는 가운데로 병력과 무기와 탄약와 폭탄 운송을 위한 철로가 부설되어 있으며, 큰 땅굴은 트럭도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고, 그리고 땅굴 구조는 단선이 아니라 위 아래로 연결되는 다층 구조라고 한다. 기고자는 이러한 다층 구조가 베트콩의 구찌 땅굴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북괴의 남침 장거리 땅굴들의 구조와 빼 닮았다.

결국 땅굴전쟁은 공산군들이 자유 민주 국가 진영을 향해 선전포고 없이 비밀리에 기습공격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이슬람 제국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에는 흡사한 점이 아주 많다. 예를들어 보면, 1970년 12월 파키스탄에서는 처음으로 1인 1투표 선거가 있었는데, 이 해의 선거에서 새로 창당된 인민당은 '우리의 신앙은 이슬람교, 우리 정치는 민주주의, 우리의 경제는 사회주의."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이 후 대통령이 된 그 나라의 대통령 줄피카르 알리 부토(Zulfikar Ali Bhutto)에 의해서 사유재산이 몰수된다. 사유재산 몰수는 공산주의의 전유물 아니든가? 그래서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 이데올로기 역시 그 기저에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코란이 놓여있으나, 그것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아주 흡사하다기고자의 글을 따라 가 보자. 이중 대괄호 “ [[ ]] ”는 역자가 집어 넣은 것이다. 



사진: 가자지구로부터 남부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하마스 군에 의한 지하 땅굴이 이스라엘 가자 접경 근방에서 2014년 8월 4일에 공개됐다.(Ilia Yefimovich/Getty Images)

이스라엘과 가자 사이의 최근 전쟁에 있어 아주 놀라운 발전은 하마스(Hamas)가 은밀히 발전시킨 정교한 땅굴 시스템의 발견이었다. 가자지구 땅 속을 달리는, 고급 기술이 없어도 뚫을 수 있는 캄캄한 땅굴들은 지상의 이스라엘 현대 무기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만약 땅굴들이 구식 전쟁 수단으로 간주된다고 하더래도 그것은 땅굴들이 군사적 고려 대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용되는 아주 정교한 무기들과 비교해 볼 때 땅굴들은 [[이미]] 시간의 검증을 거친 것들이다. 수세기 동안 땅굴들은 적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부대들이었으며 그리고 약한 전투원들로 하여금 잇점을 가지고 자신들의 전쟁터로 향하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무인기들 또는 레이저들 또는 대-미사일 방어제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전쟁이 있는한, 땅굴들은 거의 확실히 전쟁 수단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사진: 예술가의 눈에 보여진 1204년 샤토-겔라드 포위(Eugene Viollet-le-Duc에 의한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프랑스 건축 사전(1856)으로부터)


고대부터 현대까지

땅굴들과 동굴들, 땅굴의 지질학적 전신(前身)들은 성서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전쟁사를 갖는다. 최소한도 삼천년 전에 전투원들은 강적들을 만나면 숨기위해 땅굴들을 이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위치해있는 지역에서 특히 그렇다. 주후 66년부터 70년까지의 대규모 유대인 반란 동안 로마 군단들에 맞서는 유대인 게릴라식 공격에 사용됐던 산악지대에 뚫은 많은 것들을 포함하여 성지에는 450 개 이상의 고대 동굴 시스템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로마인들은 유럽 라인 강에서 다브뉴 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선들에서 땅굴들로 연결된 비빌 참호들을 파놓은 그리고 로마병정들을 기습하기 위해 거기서부터 땅 위로 솟아 오르는 게르만부족들과 맞서 싸울 때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직면하는 것과]] 동일한 전술적 상황에 직면했었다.

그러나 땅굴들의 쓰임새는 반란이나 폭동들에 한정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로마제국은 포위한 상태에서 공격하는 전쟁 무기로 땅굴들을 사용하게 됐다. 성벽과 수직되게 비밀 해자(垓字, trench, 참호)를 판 다음 지반을 약화시켜 성벽을 허물기 위해서 땅굴을 파들어감에 의해서 로마인들은 봉쇄에 의해 성안 사람들이 굶어 죽기 이전에 오랜 포위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땅굴의 이런 용도가 이내 그 역(逆)땅굴(countertunnels)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아마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고대 로마역사가 폴리비우스(Polybius)는 암브라키아(Ambracia) 라는 그리스 도시에서의 주전 189년 한 포위를 묘사한다. 바로 이 곳에서 로마인들은 그 성벽 나란히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위된 자들은 수갱(竪坑, shaft)으로부터 나오는 버럭[[땅굴 팔 때 나오는 흙과 돌 등 등]] 처리 하는 것을 많은 날이 지나도록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버럭 더미들이 너무 높아져서 그 성 안 사람들에게 드러났을 때 성 안의 수비 지휘관들은 성벽 안쪽과 나란히 참호를 파도록 수비병들에게 급하고 강하게 다그쳤다 …… 참호가 원한 만큼의 깊이가 된 다음에 그들은 놋쇠로 된 아주 앏은 많은 관(管, vessels)들을 성벽에 가장 가까운 참호 바닥에 이어 놓고서 …… 밖에서 파들어 오는 소리들 들었다. 밖의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여 떨리는 이들 놋쇠 된 관들 중의 그 하나에 의해서 지시된 지점을 표시한 그들은 …… 적의 땅굴에 정확히 맞 닿을 수도록 계산한 뒤에 안으로부터 땅굴을 파 나오기 시작했다. “

이것은 땅굴 파는 적들의 노력을 방해하여 중단시키기 위한 역 땅굴들의 용도에 관한 훌륭한 묘사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음향학을 사용하여 땅굴들을 발견하는 것에 관한 첫 기술이며, 비록 꼭 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정교해졌던 하나의 전략이다.) 256년에 행해진 두라-유로포스(Dura-Europos) 라는 로마 도시에 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포위는 다른 새로운 발전으로 이끌었다. 그 성벽 아래로 땅굴을 뜷어가는 페르시아 군대들이 로마인의 역 터널에 부딪혔을 때 그들은 역 터널 안의 병사들을 질식시키기 위해 유황과 역청(pitch)을 합칠 때 생겨나는 독가스로 역 터널을 채웠다—이것이 전쟁에 있어서의 가스의 첫 사용이다. 터널과 역터널 작전은 꾸준한 우세를 점하기 위한 방법들을 꾸준히 찾고 있는 부대들과 더불어 중세 내내 지속됐다. 사자의 가슴을 지닌 영국 왕 리차드(Richard)에 의해 세워진 성채인 샤또 겔라드(Château Gaillard)포위에서 프랑스 병정들은 공고한 세 방어 벽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그 성채 내부의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텅빈 무방비상태의 하수구 통로를 그들은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땅굴을 파기 위해 폭약이 더해졌을 때인 16세기에 그 결과는 문자 그대로 폭발적이며 그리고 점점 더 치명적이 됐다. 적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괴멸시키기 위해 유럽 군대들은 감추어진 구멍에 폭약을 채워넣는, 사프(saps)로 알려진 정교한 기슬들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위험을 모르고 작업을 했던 기술자들에게는 “사퍼”(sapper)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이 수단은 북부군이 남부군 라인 아래에 은밀히 땅굴을 팠을 때인 1864년 7월 페테르스부르크(Perersburg) 포위 싯점의 미국시민전쟁 동안에 놀라운 정점에 도달했다. 이 때 북부군이 그로 인하여 생겨난 구멍들 때문에 올라 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베럴의 폭약을 남부군은 터널에 채웠다. (폭약) 구멍 전투(The Battle of the Crater)로 알려졌던 것에서 남부군은 단지 땅굴 귀퉁이에 줄지어 서서, 무력한 자신들의 적들에게 치명적인 총탄을 쏘다 부었다.



사진: 버지니아 페데르부르크 포위, 1864년10월 27일.

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서의 땅굴(tunnel) 기술진들의 주요 임무는 더 이상 도시들을 요새화하기 위해 땅굴들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서부 전선에 참호(trench)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참호들은 각 방면으로 전선(front lines, 前線)들을 이어주는 땅굴들의 고정된 시스템이었다. 이로부터 오래지 않아 부대들은 적의 참호들을 파괴하기 위해 땅굴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영국군은 이것에 아주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1916년 좀므 전투(the Battle of the Somme)에서 영국군은 독일군 참호 아래의 거대한 두 광갱(鑛坑, mines)을 폭파시켰다. 1917년 메신느 능선(Messines Ridge)에서 영국군은 18개월 동안 독일군 전선 아래에 22개의 분리된 땅굴들 또는 광갱(광산 굴)을 굴착하는 정교한 전략을 구사했다. 영국군이 굴착했으나 도중에 그만 두어야 했던 광갱들 중의 하나를 독일군들은 발견했다. 그러나 다른 21개는 발견되지 않은 채 완성됐으며 그리고 그것들에 티엔티 450톤이 채워졌다. 5월 30일, 폭발음들이 들리기 직전에 영국군 장교 허베르트 플루머(Herbert Plumer)는 자신들의 참모들에게 말했다: “ 자, 우리는 내일 역사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지형을 변화시킬 것이다.” 엄청난 폭발 굉음과 더불어 미신느-위챠트 능선(Messines-Wytschaete Ridge) 전체가 터지자, 런던 10번가 다우닝 거리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고 영국 수상 데이비드 를뤼드 게오르그(David Lioyd George)는 주장했다. 만(萬) 명의 독일군이 즉사 했거나 또는 생매장 당했다. 그러나 플루머가 옳았다. 비록 영국군이 메신느 능선의 남겨진 부분을 차지했지만 전쟁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대신에 전쟁은 다른 해 하고도 반(半)이나 지속됐다.



선전(善戰) 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마지노 선 생겡(Saingghain)요새로 행진해 들어가는 제51 관구군(Highland Division) 1939년 11월3일(위키페디아)

1차 세계대전은 전쟁터에 세 가지 위대한 혁신을 가져왔다—지상의 탱크, 대량살상 대포, 그리고 비행기. 이 세 혁신들로 인하여 군인들은 점점 더 열린 공간으로 노출된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전쟁 후에, 몇 몇 군사 전략가들은, 부셔지지 않을거라고 여겨지는 시멘트 요새들을 지하 땅굴로 복잡하게 연결시켜 놓으므로서, 전체 부대를 그 지하 공간에 놓으려는 시도로 반응한다. 이런 노력들 중 아주 유명한 (그리고 아주 쓸데없는) 것은 프랑스의 소위 마지노 선(maginot line)이다. 마지노 선은 정교한 지하 벙커 시스템과 그리고 땅굴 네트웍을 통해서 디젤 기관 힘으로 움직이는 철도로 모두 연결되는 지상 요새들과 36개의 더 적은 요새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1940년 독일 기동 타격대가 마지노 선을 완전히 우회하였으며 그리고 프랑스는 요새 안의 수천의 병사들 미쳐 응사하기도 전에 그 전쟁에서 졌을 뿐이었다.

미군도 비슷한 어떤 것을 건설했다. 그러나 더 적은 규모로, 마닐라 만의 커리지도르(Corregidor) 섬에, 약 24피트 넓이와 18피트 높이와 831피트 길이의 땅굴로, 탄약 저장고와 복잡한 대포진지 구축을 위해 단단한 암반을 뜷었으며, 군수품 저장과 부대 병영 용도로 24개의 부속 땅굴들이 더해졌다. 이곳이 미국 장군 더글라스 맥아더(Gouglas MacArthur)과 그의 가족과 참모진 그리고 필리핀 대통령 마뉴엘 케즌(Manuel Qezon)이 1941년 12월 일본군이 필리핀 루손(Luzon) 섬 침공 동안에 은거했던 곳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새 기동타격술이 그것을 고립된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자 마자, 자신의 짝 마지노 선처럼, 커리지도르의 말린타(Malinta) 땅굴은 난공불락의 요새 보다는 하나의 트랩(trap)이었던 것으로 판명났다. 오늘날 이 두 곳은 관광 명소와 그리고 어리석은 군대의 상징 이상의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집단 지하 기지가 건설되고 있었던 동일한 시기에 마찬가지로 땅굴들은 반란과 폭동의 도구로서 재 탄생했다. 땅굴 전쟁의 이런 재탄생의 개척자들은 중일전쟁, 특히 1937년과 1938년 헤베이(Hebei)성의 란촹(Ranzhuang) 마을 부근 전투 기간 동안의 중국인들이었다. 중국 게릴라들은 전쟁터 은닉장소로 이용하기 위해 그 마을 집들 사이로 9마일 땅굴들을 팠다. 그 결과 이들은 후방에서부터 일본군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 땅굴 입구와 출구는 보통 집 안에 또는 벽 안에 나 있어서, 게릴라들은 방해받지 않고 들락거리기 쉬웠다.

그러나 일본군이 이내 곧 땅굴들을 포착해서 물 또는 심지어 독가스로 그 땅굴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에 물과 가스를 뽑아내는 여과장치를 설치함으로서 중국인들은 항전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땅굴전쟁인 이러한 고양이와 생쥐 게임은 일본군이 마지막 철수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 전투가 결말지워질 때까지 란촹 땅굴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논쟁거리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그것들은 침략자 일본에 맞서는 저항의 기념비들이며, 그리고 마지노 선처럼 주요한 관광 명소로 됐다.



사진: 커리지도로(Corregidor) 섬의 말린타(Malinta) 땅굴 지휘본부(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Wikimedia)

일본군이 중국인들과의 그 땅굴 전쟁으로부터 배웠던 것은,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해병대들에게 맞선 그들의 전투에 매우 귀중했다. 일본인들은 먼저 펠레리우(Peleliu) 섬에 그리고 그 다음에 아이와오 짐마(Iwo Jima)에 정교한 땅굴 네트원으로 연결된 비밀 벙커들과 포진지 기법을 이식했다. 거기서 그들은 수리바키(suribachi)산 전체를 여러 출구를 지닌, 타이트하게 연결된 땅굴들과 벙커들의 벌집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땅굴들의 어느 한 끝을 기어 오르는 해병대는 다른 끝으로부의 갑잡스런 공경에 직면했을 것이다.

일본 땅굴들을 파괴하는 것은 끔직한 일이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일본군과 마주칠 때 미 해병대는 화염방사기, 폭발물(explosive charges), 그리고 수류탄을 선호했다. (미국 교전규칙에 따르면, 독가스는 옵션이 아니었다). 펠레리우에서 해병대는 대부분 땅굴들 때문에 타라와(Tarawa) 해변 전투보다 곱절의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오와 짐마에서 해병대는 그 섬을 함락시킨지 두달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땅굴들 파괴하고 있었다.

일본군들이 미치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어려움들을 미군들에 입히므로서—그리고 가능한 한 천천히 고통스럽게 값비싼 승리로 가는 길을 미국으로하여금 걷게 하므로서—일본군들은 워싱턴으로 하여금 비슷한 대규모 일본 본토 침공 시도를 좌절시키려고 했다. 그렇게 됐다. 그러나 일본군들이 바랬던 길로는 아니었다. 침공을 피하기 위해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Truman)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라는 일본 도시들에 원자폭탄들을 투하에 의해서 그 전쟁을 종결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미국

원자 시대 개막은 군대들로 하여금 군 수뇌진을 핵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더 깊이 땅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북미우주항공방어지휘본부(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콜로라도 케년(Cheyenne)산맥 안, 단단한 화강암에 2천 피트 깊이로 5 에이커 네트웍 땅굴들을 포함한 짐작컨데 원폭안전지대(nuclear-bomb-proof shelters)을 건설했다. 그리고 대통령 긴급지휘소(The Presidential Emergency Operations Center)는 백악관 동편 쪽 120 피트 아래 위치시켰다. 비록 PEOC가 9/11 위기 동안에 무능한 부통령 딕 케니(Vice President Dick Cheney)에 의해서 사용됐긴 해도, 다행히 어느 누구도 그 궁극적인 검증을 위해 거기에 놓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 동안의 아주 유능한 땅굴 전쟁 학도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공산군이였다. 땅속 전쟁은 1950년대의 한국에서 새로운 수준의 규모와 정교함에 도달했다. 미국 공중지배권을 벗어나기 위해 북괴군과 중공군이 드넓은 땅 속 요새를 건설한 결과 지표면 각 1마일 전선(戰線) 당(當) 지하 땅굴 2마일이 뚫려 있었다. 이를 모두 합치면 300마일이 넘는다. 땅굴들은 대부분 포로(prisoner)들에 의해서 건설됐다. 이들은 수 만의 공산군들과 군수품들 숨기는 것 뿐 만 아니라 국방군 또는 유엔군에게 산악 동굴에서 이동하며 발포한 후, 연이은 항공기 폭격때 재빨리 피해 숨어들 수 있는 대포 진지 전체를 숨기는 구조로 2백만 입방미터 이상의 땅굴을 파 놓았다.



사진: 월남에 있는 베트콩 땅굴 (Peter van der Sluijs/Released/Wikimedia)

월남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뚫려진 땅굴들은 그 량에 있어 북한 땅굴에 거의 근접한 유례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베트콩더러 더 많고 더 나은 군대의 적들에 맞서 수년 동안 게릴라 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큰 복잡한 지하 땅굴은 1950년대에 프랑스 식민 군대에 맞서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시작된 사이공(Saidon)에 가까운 구찌(cu chi)에 있는 땅굴들이었다. 이 땅굴들은 캄보디아 접경을 향해 약 200마일 뻗어 있었으며 그리고 탄약저장고, 병영들, 일터, 부엌, 병원, 그리고 심지어 선전영화 상영을 위한 극장까지 갖춘 완전한 땅속기지였다.

1966년에 미군은 베트콩 땅굴 바로 위, 구찌에 베이스캠프(4,500명 군인이 거주하는 약 1,500에이커 복합기지)를 건설했는데, 최소한도 초창기에는 그 땅속 위협을 지각하지 못했다. 이내 곧, 검게 위장한 게릴라들이 밤에 나타나 비행기를 파괴하고 그리고 탱크를 포함한 무기들과 장비를 훔쳐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미군은 구찌와 그 근방 지역을 “무차별 포격 지대”(free fire)로 선포하고 그 지역을 야포와 비행기로 맹 포격하고 심지어 베트콩을 괴멸시킬 심산으로 네이팜 탄(napalm)을 투하했다. 그렇지만 야습은 계속됐다. 자신들의 땅굴에서 베트콩 게릴라들은 미군 폭결 때는 대기하면서 재 공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 미군이 제거하기에는 불가능한 [[적군의]] “눈 안에서 적을 찌르는 가시 같”았다 라고 베트콩 한 장교는 후에 그 땅굴들을 기억했다. 한 역사가에 따르면, Cu Chi(구찌) 땅굴이 베트콩으로 하여금 미군사 요충지를 깊이 관통할 수 있게 한 결과 그 미군 베이스 캠프 이발사 13명 모두가 베트콩들이었다.



사진: 시더 폴(Cedar falls) 작전 기간 동안(1967년 1월 24일) SGT 로널드 A. 페이넌(Ronald A. Payne)이 사이공 북쪽 25마일 떨어진 곳에서 베트콩과 이들의 장비들을 수색하러 땅굴에 들어가기 전에 땅굴 입구를 살펴보고 있다. (NARA/Wikimedia)

급기야 한 호주 엔지니어가 그 베이스 캠프 지하 땅굴들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 더 광범위할 것이라고 밝히자 미군은 들어 앉아 있는 그 말벌 둥지가 무엇인지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땅굴들을 파괴하려는 노력들에는 “땅굴 쥐들”(Tunnel Rats)이라고 불리우는 호주인과 미국인과 뉴질랜드인들로 구성된 팀들이 포함했다. “땅굴 쥐들”은 보통 손전등 한 개와 몇 개의 수류탄과 그리고 작은 권총들 이외에는 그 어떤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단지 2피트 폭의 출입구멍으로 들어갔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4개의 분리된 층들로 건설된 동굴들과 굴들로 인도하는 광대한 미로의 교통로였다. 담대하고 용감하게 땅굴 쥐들은 안에서부터 복잡한 구찌땅굴 컴플렉스를 제거하기 위해 부비트랩들, 뱀들, 전갈들, 박쥐 떼들, 그리고 분노의 베트콩 전사들 뿐만이 아니라 밀실공포와 조여드는 답답함을 견뎌 냈다. 이와 동시에 위에서부터 B-52 폭격기들이 구찌 땅굴들을 맹공격하여 많은 땅굴들을 붕괴시켰다. 구찌 작전에서 약 12,000 명의 베트콩 전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 나라가 전쟁에서 철수할 때까지 땅굴 컴플렉스를 겨우 극복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오늘날 심지어 베트남인들 조차 자신들이 이제까지 겪은 적들 중 가장 거칠고 치명적인 자들이었다고 그 땅굴 쥐들을 추켜 세운다. (이스라엘 군대도 엘리트 야할롬 전투(Yahalom combat) 엔지니어들의 한 부분으로서 사무림(SAmoorim)[“족제비들”] 이라는 비슷한 조직을 지닌다.) 비록 땅굴 쥐들이 베트남에서의 미국 미션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미군 역사에 있어서 가장 근성있는, 그러나 대부분 잊혀진 장들 중의 하나를 써 내려갔다.

(비록 베트남인들은 1978년 중공 침입기에 땅굴들의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베트남에서의 땅굴 굴착은 전쟁 종료와 함께 멈췄다. 한국전쟁 이후의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땅굴에 대한 평양의 선호는 증가했다. 새로운 남침을 준비하면서 북한은 그 두 나라 사이의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땅굴들의 군락(Complexes)을 고안했다. 1974년과 1990년 사이에 남한 당국자들은 북한으로부터 분계선 아래로 뻗어 나오는 4 개의 땅굴 군집을 발견했다. 각 땅굴은 2미터 높이와 2미터 폭으로 지표면 아래 100미터 이상 내려 가 묻혀 있었다—세 명의 북괴군이 어깨에 어깨를 대고 행군하기에 충분한, (매 시간 마다 대략 10,000 명 단위로 나뉘어진 북괴군 병력이 행진하기에 충분한) 폭이었다. 그 땅굴들 중의 하나는 남한의 수도 서울로부터 곧장 30 마일 떨어져 있었다. 남한 당국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땅굴들을 폐쇄시켰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발견되지 아니하고 남아 있을 수 있는 보다 더 많은 땅굴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위협

오늘날 이스라엘 방어군은 가자(Gaza)에서 [[남한과]] 비슷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하마스가 지배하고 있는 영토로의 최근 IDF( 이스라엘 방어군, Israel Defense Forces )의 진공(進攻)에서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최소한도 31 개의 군사 땅굴들을 파괴했다. 그러나 가자에는 많은 미로의 땅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다.

이러한 땅굴들은 확실히 즉흥적인 산물이 아니었다. 실로 그것들의 크기와 정교함은 최근에 북한이 하마스에 땅굴 굴착 무기들과 숙련가들을 제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마스(Hamas) 땅굴 건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거의 전적으로 지하 약 60 피트에서 작동하는 전기 착암기를 가지고 많은 량의 흙 제거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 다음 땅굴의 면들은 콘크리트로 발라지며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병력들과 미사일들과 그리고 무기들의 수송을 쉽게하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희생물들을 납치하기 위해 철로들이 부설됐다. 몇 몇 하마스 땅굴들은 트럭을 두루 충분히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크며 그리고 거의 모두 부비 트렙들이 설치돼 있다. 마찬가지로 하마스 땅굴들은 민간인들이 땅굴들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로독 구조화되어 있다. 예를들어 하마스의 주요 지휘부는 병원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 한 서독 기술자가 1990년 1월 12일 북괴 4 번 땅굴 가치를 제거하기 위해 굴착 된 역 땅굴 안의 땅굴 굴착기를 살펴보고 있다 (U.S. Army/Specialist Jean Paul Ruch/Wikimedia)

놀랍게도 IDF(이스라엘 방어군)가 발견했던 것은 하마스 땅굴들이 단순히 뻗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마찬가지로 그것들은 9월 24일 로쉬 하샤나흐(Rosh Hashanah) 공휴일에 맞추어 계획된 전면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준비 무기들로 꽉 차있었다고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말한다. 만약 하마스의 로켓 공격들이 가자에서의 지상 작전을 포함한 대담한 이스라엘 반격을 촉발시키지 않았다면 그 땅굴들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닥아 올 하마스의 공격은 9/11 공격이 미국에 입혔던 것과 같은 정도의 심리적인 타격을 이스라엘에게 입혔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땅굴들이 전쟁에서 지니는 커다란 잇점이다. 당신이 봐야 할 곳과 그리고 찾아야 할 무엇을 알지 못하는 한 땅굴들은 보이지 않는 그리고 말없는 위협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역 땅굴들은 그것들이 어디의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발견하는 인간 지성(즉 정보관)과 본능과 그리고 행운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구찌 땅굴과 메신느 능선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땅굴들이 발견됐을 때는 보통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는 것은 적군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두려움으로 전체 공동체를 가득채워 적군들을 괴롭힐 수 있다. 괴롭히는 동안 땅굴 전쟁은 이러한 심리전 차원의 공격을 다른 공격들에 덧붙혀 전개한다.

이스라엘에 사는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 방어군(IDF)이 하마스가 건설한 땅굴 모두를 훼파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갯 수 이상으로 하마스의 시아파 짝 헤즈볼라(Hezbollah)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쪽으로 땅굴들을 파들어 왔다. 보고서는 헤즈볼라 땅굴들 중 어떤 것은 심지어 보다 더 정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남한 사람들은 그들의 공산주의 이웃이 비무장 지대 아래 파 놓았던 땅굴 모두를 발견했다고 확신 할 수 없다. 설령 비록 1991년 이후로 새로운 땅굴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하더래도 말이다.


발견 기술(Technology) 대 땅굴들

심지어 미국조차 안심하고 쉴 수 없다. 멕시코-미국 접경을 가로질러 굴착된 200 개 이상의 땅굴들은 최근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아리조나, 노갈스(Nogales, Arizona)에서만 95개—, 이것들은 땅속 공격의 공포를 불러 일으겼다. 접경을 가로지르는 이 땅굴들 대부분은 불법 이민자들 또는 마약들을 밀수입하는 데에 사용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 땅굴들은 테러리스트들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위협은 [[소가 뒷걸음치다가 개구리 밟는 식의 ]] 요행수(Dump luck)나 우연한 정보에 의존하는 것 보다 훨씬 체계적인 새로운 땅굴 발견 방법들을 발전시키도록 미국방부와 안전국(DHS)을 다그쳤다. 2011년 1월 심지어 미 정부는 가장 최근의 안티-땅굴 테크놀로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아리조나, 유마에 있는 유마 프로빙 그라운드(Yuma Proving Groung)에 땅굴연결시험지대(Joint Tunnel Test Range)설정했다.

하이테크 땅굴 발견학은 굳이 말하자면 부정확한 학문이다. 지하 발견 숙련가들 중의 한 사람이 폴 베르만(Paul Berman)은 신문 이스라엘 타임즈에서 지하 일 부분의 저항 정도를 측정하는 전기저항x선사진법(electrical resistivity tomography)은 땅굴 존재를 가리킬 수 있는 비정상지점(anomalies)들을 발견할 수는 있으나 다시 시도해보면 다른 결과를 갖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어느 누구도 숨겨진 땅굴들을 발견하는 메직 하이-테크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DHS(안전부,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과학 기술 관리협회(Science and Technology Dirctorate)의 죤 베리코(John Verrico)에 따르면 “땅굴들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지성(Intelligence)에 의해서만 여태까지 그 위치가 발견됐다. 기름과 가스 조사 또는 건설 교역을 돕는 지진 실험 테크놀로지들은 땅 일부의 지리물리학적 특성을 발견하나 땅굴들의 독특한 특성들을 찾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 틈(gaps)이나 벌어진 곳(crevasses)을 발견하는 데 잘 작동하는 센서(Sensors, 감지기)들은 인공 땅굴의 존재를 포함하여 다른 것의 의의있는 특징들을 놓칠 수 있으리라.

그라운드 표면 아래의 텅빈 곳 또는 틈을 발견하는 라디오 주파 에너지 파동들을 사용하는 그라운드 관통 레이더(Ground-Penetraing Radar, GPR)는 하나의 유망한 탐구 영역이다. GPR는 지하자원 맥을 찾고 기뢰를 제거하며 그리고 역사 유물을 찾는 데에 잘 작동한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땅굴 깊이인 10미터에서 20미터까지의 보다 깊은 곳을 들여다 보는 것은 보다 더 어렵다.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은 지하 깊숙한 땅굴들을 표시하기 위해 전자기 파동들을 사용하여 미 안전부(DHS)의 그라운드 관통 레이다(GPR) 저주파 버전을 잘 사용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들은 확정적이지 않다.

다른 유망한 접근은 땅 속으로 200 헤르쯔의 음파들을 전달하는, 이다오 국립 실험실(Idaho National Laboratory)에서 개발한 원형 엑티브 음향(prototype Active Acoustic) 땅굴 발견자(Tunnel Detector)이다. 화면 위의 움직임 발견자(onboard motion detector)는 음파들이 지나가는 흙과 바위를 이들 음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측정한다. 만약 그라운드가 딱딱하면 결과하는 그래프는 급속히 솟아오르는 선을 보여준다. 만약 틈이 있거나 또는 텅 비어있다면 그래프 선은 뭉쳐지거나(dump) 또는 내려간다(dip). 세번째 접근은 땅굴을 위치시키기 위해 지구 중력 장의 사소한 변화를 측정하는 마이크로 중력 분석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실험이 보여줄 수 있는 것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엄밀함을 요구하며 그리고 어떤 그럴듯한 결과들을 얻기 위한 어려운(heavy) 조사를 해야한다.

어떤 경우에든, 일단 땅굴이 발견되더라도 특히 부비-트랩이 설치돼어 있다면 그 땅굴을 안전하게 훼파하거나 또는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어떤 땅굴의 구조를 탐색하고 그것을 무력화하기 위한 로봇 장치들의 사용은 결국 자발적인 “땅굴 쥐”를 대치할 것이다. 그러나 폭약과 권총을 사용하여 땅굴들을 제거하는 오랜 기법들이 현재까지는 표준으로 남아있다—그러한 접근에 위험이 내포된 채.

사실, 가자 전투로부터 생겨난 어떤 방책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의 폭동이나 군대 집단에 의해 행해지는 땅굴 전쟁은 모든 하이테크 무기체계와 전통적인 군사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인 문제로 남아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어느 쪽이 우세하느냐는 많은 요인들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 땅굴의 끝에 선명한 빛이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자라면 [[즉 땅굴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낫다. [[땅굴 위협의 완전한 제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14년 8월 26일 허드슨 연구소 상임 연구원, 아쳐 헤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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