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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의 모순 해결 방법: 취소(만수크)와 대체(나스크) 

목차:
1)들어가기, 2)코란의 모순들: 음주, 테러, ...
3)모순들의 해소: 대체(나스크)교리 ☞ 평화의 절들이 검(칼)의 절로 대치 됨.
 
4)계시 상호 간의 모순 해소를 위한 계시, 4-1)질문금지령, 4-2)취소(만수크)교리, 4-3)나스크(대체)교리.
 
5)꾸란 연구 어려움: 대체 원리에 의한 나시크와 만수크 문제, 5-1)대체(나스크)론 도입동기, 5-2)나스크론 적용예들: 까블라(기도방향), 과부재혼, 전쟁과테러, 강제개종.
6)꾸란과 순나 사이의 나스크(대체)원리 논쟁. 6-1)나스크의 3세가지 방법, 6-2)나스크의 두가지 또는 네가지 의미들, 6-3)나스크 교리 논란.
7)취소된 절들과 대치된 코란 절들의 목록.
 
8)결론: 그러나 일점일획도 취소되거나 바뀌거나 대체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9)나스크 관련 동영상들.
 
 
1)들어가기 
[[ 이슬람의 타끼야(기만술)과 관련되는 또 하나의 교리(‘aqīdah)는 나스크(대치)와 만수크(취소)이다. 정작 작금의 세계 테러와 전쟁의 95%를 한쪽에서 일으키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정작 자기들이 평화스럽고 자비롭다는 이슬람의 해괴한 이중적인 태도는 나스크(대체)론과 결부되는 의도적인 기만술(타끼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으로 인한 문제를 지니지 않는 나라를 한 번 헤아려 보라.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거의 없다. 아래(↓)  세계지도에서 빨간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이슬람 지하드세력에 의해 테러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출처 클릭). 온 세계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빨간색이지 않는가? 중국! 일본?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빨강색이 아니라고? 꿈을 깨시라.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은 위장(키트만)과 기만(타끼야)에 능해 타 종교 및 기타 신분으로 위장하여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비행기 납치, 총기와 흉기 사건, 목베는 것, 타살, 묻지마 살인과 폭행, 폭팔물, 노예, 인신매매, 협박, 강도, 다국적 종교인들의 유괴 등 다양하다. 예를들어 서울역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신고 역시 지하드 행위에 속한다.
    폭력과 테러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일상사이다. 몇 일 전(2013년12월23일)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에 의한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해서 이집트경찰관 12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관련기사클릭). 바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이러한 폭력을 코란에 근거하여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만수크•나스크(교리, ‘aqīdah)이다. 이슬람 테러와 관련시켜 이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마크 가브리엘 박사를 따라가 보자(Islam and Teerrorism, M.A.Gabriel, Front Line, USA, 2002, pp.29~32)--가브리엘 박사는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알 아자르(Al-Azhar) 대학의 이슬람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신실한 무슬림이요 이맘이었다. 그러다가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가브리엘 박사의 동영상(아래 ↓)은 유투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의 책 ‘이슬람과 테러리즘’(우측 사진 →)의 섹션II(이슬람 테러리즘의 뿌리들)의 4장(이슬람의 핵심)에서 가브리엘 박사는 나스크에 대해서 그것은 코란의 모순된 절들을 해소하기 위해 생겨난 교리라고 설명한다. 다음은 관련 내용의 번역이다. ‘[[ ]]’로 묶어진 부분은 게시자가 쓴 것이며 관련 제목들 역시 게시자가 단 것이다. ]]
 
2)코란의 모순들: 음주, 테러
기독교인들을 긍정적으로 말하거나 또는 기독교인들과 우호를 증진시키는 꾸란의 절들에 관해 당신은 아마 텔레비전에서 듣거나 또는 인쇄물에서 읽었을 것이다. ‘그러한 절들이 실제로 있나?’ 라고 당신이 의아해 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 그 미스테리에 대한 답이 있다: 꾸란은 모순들로 채워져 있다. 기독교인들은 지옥으로 가게 돼있다 라는 절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칭찬받는다 라는 절들을 당신은 발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주제들에 관한 [[모순된]] 절들도 있다. 예를들어 무함마드 당시 아랍 사회에서는 술을 많이 마셨다. 한 계시는 기도하러 모스크에 갈 때 아랍인들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나 기도가 끝났을 때 술을 다시 마실 수 있다 라고 말했다. 후에 다른 절들이 와서 모든 시간에 술을 금했다.(수라2:219와 수라5:90을 비교 해 보라)
 
[[참고로 수라 관련 절들을 옮겨 본다. 영역본(The Holy Quran, A. Yusuf Ali), 한글번역본(성 꾸란, 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과 그리고 관련 아랍어 본문을 참조했다.
 
(취소된-만수크- 절): “ 술과 도박에 관하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물을 때 일러 가로되 ‘그것들에는 큰 죄악이 있고 사람에게 어떤 유익이 있으나 그 죄악이 그 유익보다 더 크도다.’ 또 사람들이 그것들이 얼마나 소비되야 하느냐고 그대에게 물을 때 일러 가로되 ‘네가 필요한 것보다 여유있게.’ 그리하여 알라는 너희로 생각하게 할 그 귀절을 주셨느니라.(수라2:219 A.Yusuf Ali 영역)
 
(대치된-나시크- 절): ‘믿는 자들이여 술과 도박과 우상숭배와 점술은 사탄이 행하는 불결한 것이거늘 그러한 것들을 피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번성하리라.’(수라5:93, A.Yusuf ali; 파하드국황출판청의 것은 수라5:90임)
 
수라 2:219에서는 ‘필요한 것 보다 여유있게’ 술을 마셔도 된다고, 즉 정도 껏 마셔도 된다고 한 반면 수라5:93에서는 술을 불결한 사탄의 것이니 술을 피하라 즉 마시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 파하드 국왕 꾸란 출판청에서 펴낸 한글 성 꾸란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술과 도박에 관하여 그대에게 물을 때 일러가로되 그 둘에는 큰 죄악과 인간에 유용한 것이 있으나 그것의 죄악은 효용보다 크다 이르되 또 그들이 무엇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되느냐고 물을 때 일러 가로되 그것은 여분이라 일러라 그리하여 하나님은 너희에게 계명을 주신 후 너희로 하여금 숙고하도록 하였노라’.
    코란의 위 한글 버젼은 먼저,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했다(아래 사진 참조 ↓).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인들을 호리기 위한 이슬람의 타끼야(위장술) 이라는 것은 이미 다른 게시글에서 언급했다(관련 글 보려면 클릭 하시오!).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중동 일부 지역에서는 알라와 '하나님'이 혼용되기도 하고, 그리고 코란에서 성경의 용어들이 아주 많이 차용되기도 했으나, 이것들은 기독교에서의 본래 의미와, 궁극적으로 볼 때, 전혀 다르므로 그렇다. 적절한 기회에 이에 관한 충분하고 설득력있는 글들이 게시 될 것이다.
    다음으로, A. Yusuf Ali가 ‘They ask thee how much They are to spend; Say: What is beyond Your needs’(사람들이 그것들이 얼마나 소비되야 하느냐고 그대에게 물을 때 일러 가로되 ‘네가 필요한 것 보다 여유있게.’)라고 번역한 부분을 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이 ‘그들이 무엇으로 자선을 베풀어야 되느냐고 물을 때 일러 가로되 그것은 여분이라 일러라’고 번역한 것이 문제다. 의미가 통하는가? 아주 애매한, 어찌보면 의도적인 왜곡이다. 아마 ‘자선을 베풀’되 ‘여분으로’ 라는 뜻일게다. 여분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도대체 무슨말인가? 술은 본디 죄악이나 사람에게 유익한 구석도 있으니 자선을 베풀 때 술을 마셔도 된다는 것으로 이해 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된 아랍어, ‘윤피꾸나’(yunfiqūna, ينفقو ن, 우측 사진→) 가 ‘자선을 베풀어야’ 라는 뜻인가? 천만에! 아니다. ‘유’는 문법적으로 3인칭남성미완료(iv변화)임을 나타내는 접두어이며, ‘ㄴ피꾸ː’는 ‘소비하다’(spend)를 뜻하고, 그리고 ‘나’는 문법적으로 주격대명접미사로서 그것들 곧 술과 도박을 받는다. 따라서 ‘윤피꾸나’는 ‘그것들이 (얼마나 많이) 소비되야 하느냐’로 번역되야 하는데, 파하드국왕출판청 한글역본은 ‘그들이 자선을 베풀어야 되느냐’로 옮겼다.
    왜 이런 오역을 했는가?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수라5:93 곧 훗날의 계시를 염두에 두고서 이 두 귀절이 서로에 모순되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만이요 위장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여분’ 이라는 역어도 애매하다. ‘여분’이라는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남아 돌게’(여분, 餘分) 또는 ‘넉넉하게’ 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넉넉하게 자선을 베풀어야’ 정도가 될 텐데, 도대체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술과 도박은 그 자체로 죄악이나 인간에게 그래도 유익한 구석이 있으니 자선을 베풀 때 여분으로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심사숙고하라’ 라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바의 맥락인가? 이거 도대체 너무 애매한게 의도적이다. 일부러 ‘자선’(自善) 이라는 틀린 역어를 사용해서 보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선’에 해당 아랍어는 ‘소비하다’(spend)를 뜻하지 자선을 뜻하지는 않으므로 그렇다.
    그런데, ‘여분’에 해당하는 아랍어는 알아푸와(l-ʿafwa)으로서, 남성명사4격의 ‘the surplus’(남은 것)을 뜻하므로, ‘여분’ 그 자체는 무난한 번역이다. 그러나 뒤 이어지는 번역, ‘너희로 하여금 숙고하도록 하였노라’와 그것이 묶어지 때 문제가 생겨난다. ‘숙고하도록’ 이라는 말 그 자체는 어의(語意)에 맞는 역어이나, ‘여분’과 결부되어 잘못된 해석을 의도적으로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의 한글역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해석이 가능하므로 그렇다: ‘술은 그것이 큰 죄악이며 그리고 비록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도 하나 그 죄악은 유익보다 더 심대하니, 알라께서는 술을 마실 때 심사숙고하라는 분명한 귀절을 우리에게 주셨다.’ 심사숙고해서 술을 먹지 말라는 경고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심사숙고 하라고 했지 않느냐! 술을 마실 때는 심사숙고하라고, 심사숙고 했더니 술 마시고 싶더냐? 마시고싶지 않지? 그럼에도 너는 마셨으니 알라의 분노가 임하느니라 식의 경고. ‘이것은 술을 피하라’는 수라5:90의 그것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코란 안에 내재한 많은 모순들 하나가 이러한 의도적인 오역을 통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제거된 셈이다. 그러나 실은 다음과 같이 해석되는 것이 올바르다: ‘술은 비록 그것이 큰 죄악이며 그리고 그 죄악은 유익보다 더 심대하나, 그렇지만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도 하니, 얼마 만큼 마실까요? 라고 물어 오면 마실 만큼이라고 답하라. [이제], 알라께서는 너의 [애매한] 생각을 선명하게 하는 계명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술은 정도껏 마셔라'는(수라2:219) '술은 사탄이 행하는 바니 마시지 마라'(수라5:90)는 것과 모순된다. 마호멧은 한 입 가지고 모순되는 두 가지 말을 한 것이다]]
 
[[코란 안에 있는 모순들의]] 다른 예는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의 관계이다. 몇 몇 귀절들은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과 좋은 관계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하지만, 다른 귀절들은 무슬림들은 반드시 기독교인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켜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슬람 시작 때 여자들에게 히잡[머리에 쓰는 베일]이 강제되지 않았지만, 연이어진 귀절들에서 여자들은 집 안에 있어야 하며 뒤집어 쓰는 것으로 머리를 덮어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진다.
 
3)모순들의 해소: 대채(나스크, naskh, نسخ) 교리-평화의 절들이 검의 절로 대치됨
이슬람 학자들은, 따라서, 모순이 발생할 경우에 어느 절들을 따라야 할 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이것이 나스크(naskh, نسخ)에 의해 완수됐다.
    나스크는 약 20년 기간 동안의 각 각 다른 때에 꾸란이 무함마드에게 계시됐다는 것에 근거한다. 꾸란의 어떤 부분들은 후에 왔고 어떤 부분들은 더 일찍 왔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슬람 학자들은 새로운 계시들이 이전의 계시들을 무효화 했을(나시크, nasikh, override, 대체했을) 것이라고 결정했다.
    사랑과 평화와 용서에 관해 말하고 있는 귀절들이 최소한도 꾸란, 특히 하이퍼(The Heifer, Sura 2:62, 109)라 이름 붙혀진 수라[장]에는 114군데나 있다. 그러나 후에 수라 9:5가 계시됐을 때, 그것이 이런 이전의 귀절들을 취소시켰다. 이 귀절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금지된 달들이 지나면,]] 너희가 불신자들을 발견하는, 그들을 붙잡는, 그들을 포위하는, 그리고 (전쟁의) 각 전략지점에서 그들을 기다려 매복하는, 곳 곳에서 그들과 싸워 살해하라. 그러나 만약 그들이 참회해서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그리고 규칙적인 이슬람세를 낸다면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라.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시기 때문이다”(A Yusuf Ali 영역).
 
[[나는 비교를 위해 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의 한글역본의 관련 절을 아래에 제시 할 것이다: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의 한글역).
 
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의 한글역본은 ‘그들과 싸워 살해하라’에서의 ‘싸워’를 빠트렸으며, 알라 대신에 하나님이라고 썼다. 그리고 A Yusuf Ali 영역본에는 ‘금지된 달이 지나면’이 있으나 가브리엘 박사의 인용 글에는 그것이 빠져있기 때문에(아마 다른 아랍어 판본에는 없어서일 것이다) 나는 겹괄호, ‘[[ ]]’로 그것을 묶어 삽입했다. 이 ‘금지된 달들’이 문제인데, 이에 관해 ‘A Yusuf Ali’는 ‘은총의 달들이 지났을 때에만’ 이라고 주석한다 그리고 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의 한글역본 주석은 알리의 주석을 그대로 따른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전쟁이 금지된(하람, ḥarām) 이 네 달들은, 원래, 라잡 (Rajab, 7)월과 그리고 메카 순례 기간 주위 달들 즉 드후 알-키아다(Dhū al-Qiʿda, 11)월과 드후 알-힛자(Dhū al-Ḥijja, 12)월과 무할람(Muḥarram, 1)월을 가리킨다(영어위키페디아, Islamic Calender항목 클릭).]]
 
이 코란 수라9:5는 검의 절로서 알려지며 그리고 그것은 무슬림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 아라비아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그들과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 것을 설명한다. 그것은 이슬람 지하드의 최종 발전 국면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러 재원(Sources)들은 검의 이 절이 불신자들을 용서하고 더이상 그들을 죽이지 말라는 코란의 114개 귀절들을 대치하고 무효화(나스크)했다는 관념을 확인해준다. 이 재원들은 Jalal al-Din al-Syowty, Ab-Bab al-Nuzul [The REasons for the REvelation] (Beruit, Lebanon: Dar Eh’yeh al-Alowm[The Signs of Revival House], vol. 2, p.37)과 그리고 Al-Hafz Al Kalbbi, Al-Tasshel Fi Aleolom Al Tanzel]을 포함한다.
    나스크의 원리는 아주 엄하다. 만약 어떤 절이 나시크[[대체]]되거나 또는 무효화된다면, 그 절은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된다.
    당신은 ‘왜 꾸란 안에는 이런 모순들이 애초부터 있는가?, 왜 계시들이 시간마다 변했는가? ’ 라고 물을 수 있을리라. 이런 물음들은 이슬람의 그 선지자, 무함마드의 생애를 돌이켜 봄으로서 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무함마드에게 계시됐던 메시지들은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평화적이고 친절했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무함마드는 그가 자신의 첫 메시지를 전했던 도시인 메카에서 많은 반대에 직면하자, 주후 622년 떠났다. 그는 지금의 메디나로 알려진 야티립(Yathrib)으로 가서, 자신을 따르는 많은 자들을 모아 강한 군대를 만들었다. 메카와 메디나 모두 현재의 사우디 아라비아에 위치해 있다. 무함마드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는 되 돌아와 메카와 그 주위지역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이슬람을 영적인 종교로부터 정치적인 혁명집단으로 변화시켰다.
    메카에서의 그 예언자 무함마드의 생애는 거의 모두 기도와 명상이었기 때문에 메카에서의 쿠란 계시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평화와 협력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메디나에서 무함마드가 군대 지도자와 침입자가 됐을 때의 계시들은 군사력과 그리고 이슬람의 이름으로 침공(지하드)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꾸란 귀절들의 육십 퍼센트는 지하드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무함마드가 꾸란의 대부분을 그가 메카를 떠난 이후에 받았기 때문이다. 지하드는 이슬람의 근본 힘이며 그리고 추동력이 됐다. [[지하드에 관한 글을 보려면 이 게시글의 관련 부분을 클릭! ]]. 계시받은 순서대로 꾸란의 각 장들(surahs, 수라들)이 조립됐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꾸란의 [[같은 장 안의]] 어떤 절들 경우에는 그것들이 메카에서 계시된 것인지 아니면 메디나에서 계시된 것인지 각 각 확인 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당신은 계시들의 정확한 순서를 알기 위해 보다 많은 학자의 참고 지시들에로 가야 할 것이다.(Islam and Teerrorism, M.A.Gabriel, Front Line, USA, 2002, pp.29~32)
 
[[ 위 글에서 가브리엘 박사는 코란이 지니는 많은 모순들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받은 알라의 계시들의 싯점과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 해 낸다. 정치군사적인 권력을 잡기 전 메카에서의 모하멧이 처한 권력 없을 때의 상황과 그리고 메디나에서 권력을 모하멧이 잡았을 때의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계시된 모하멧의 말들 모두가 암송(구전)으로 연결되어 합쳐졌을 때 서로의 절들 간에 모순이 발생 할 수 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브리엘 박사에 따르면, 코란에 내재된 바로 이러한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훗 날 학자들은 모순되는 어느 한 항을 다른 한 항이 대체하는-나시키(nasikh,능동분사)- 나스크(naskh)교리와, 그래서 후자에 의해서 전자가 취소되는-만수크(Mansukh, 수동분사)- 만수크 교리(‘aqīdah)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근거는 코란(2:106~107; 16:101; 17:86•106; 87:6 등)에 있다.
    이와 관련한 포괄적인 논의가 있어 끌어 와 본다(무함마드의 계시는 왜 자꾸 바뀔까?, 4HIM, 서울, 2012, pp.131~139).]]
 
 
4)계시 상호간의 모순 처리를 위한 계시
4-1)질문 금지령
무함마드가 메카 시대의 소규모 집단으로 이슬람을 시작했을 때 힘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과 핍박을 견디면서 살아야 했다. 그 때는 더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게 하고 무함마드를 대적하며 핍박하는 자들에게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서 평화로운 계시를 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주하여 그 도시의 통치자로 등극하게 되자 갑자기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도리어 핍박하게데 있어서 아무런 장애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은 변질되었다든지 알라에게 자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세 신을 믿는 종교라는 등의 명분을 붙여서 알라의 이름으로 강력한 징계를 명하였다.
    무함마드를 따라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무하지룬(Muhajirun)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메카 계시도 들었고 메디나 계시도 들었다. 그래서 두 계시 간의 모순된 점들 간의 갈등과 의문이 일게 되었다. 예를들면 기독교인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는 문제를 보면 메카에 있을 때는 ‘경전의 백성들’이요,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요 등 매우 우호적으로 말을 해 왔으나, 메니나에 와서 입장이 달라지고 나서는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삼지도 말라(꾸란5:51)는 등 그들은 알라와 동반자를 둔 다신교도들로 취급하고 있는데 도대체 철저히 순종을 하고자 해도 어느 쪽에 비중을 두어야 할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믿는 성경은 진리이며 신•구약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 바로 꾸란(꾸란3:3)이라고 했다가 성경은 변질된 것이라고(꾸란5:13) 말을 바꾸니 그럼 꾸란은 변질된 것을 확증하는 것이란 말인가? 또한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고(꾸란2:256) 계시하고 나중에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이라고(꾸란8:12, 꾸란9:5)하니 어찌 혼동이 없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 가지가 다 옳을 수는 없었다. 어느 한 쪽을 취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알라의 계시는 아무도 취소할 수 없다고 하니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
 
„그대의 주님의 말씀이 진리와 정의로 완전함이니 그 분의 말씀을 변경할 자 아무도 없노라. 그 분은 모든 것을 들으심과 아심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이라.”(꾸란6:115 최명길 역)
 
„알라께서 실로 그 메시지를 계시했으니 알라께서 그것을 보호하시리라.”(꾸란 15:9 최명길 역)
 
이러한 사례가 한두 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계시 전반적인 흐름이 메카의 것과 메디나의 것은 확연히 달랐다. 따라서 무함마드를 따르는 무슬림들이 혼돈과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 때 다음과 같은 계시가 내렸다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여. 여러 가지의 일을 물어서는 안된다. 너무 분명히 알고 보면 오히려 해가 될 것도 있다.”(꾸란5:101上 김용선 역)
 
„믿는 자들이여 분명한 것은 묻지 말라 했으니 그것이 오히려 해롭게 하느니라. 또한 꾸란이 계시되는 것을 묻는다면 이는 더욱 너희를에게 해악이라.(꾸란5:101상 최명길 역)
 
질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슬람 권에서는 학생들에게 종교적인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다. 무함마드가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이는 그렇게 질문을 하다 보면 자꾸 의심이 생겨서 결국은 불신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어떤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하다가 불신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꾸란5:102 최명길 역).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이슬람의 ‘질문 금지령’인 것이다.
 
4-2)취소(Mansukh)교리
질문 금지령이 내렸으나 사람들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알라께서 상호 모순되는 두 가지 계시를 내리실 수가 있는가? 왜 그랬을까? 알라께서도 상황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가 있는 건가? 이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수습할 사람은 계시의 전달자를 자처하는 무함마드 밖에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알라의 이름으로 계시를 받는 방법을 통해서 해결을 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알라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도 알라의 계시를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지만 그 계시를 내리신 알라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전에 내린 계시를 취소할 수도 있고 변경할 수도 있고 다른 것으로 대치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에 계시한 문구를 취소하였거나 혹은 일부러 망각하게 했을 경우에, 그 이상 또는 그와 동등한 것을 주려하고 있다. 알라가 전지 전능하시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느냐? 하늘과 땅의 주권이 알라에게 있고 알라 이외에는 보호자나 원조자가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 (꾸란2:106~107 김용선 역).
 
“어떤 말씀도 폐하지 아니하며 망각케 하지 아니하되 보다 나은 혹은 그와 동등한 말씀으로 대체하시나니 알라는 모든 일에 전지 전능하심을 모르느뇨? 천지가 알라께 있음을 너희는 알지 않느뇨, 그 분 외에는 보호자도 원조자도 없노라”(꾸란2_106~107 최명길 역)[[(파하드국왕꾸란출판청 역도 최명길 역과 같음)
 
“우리의 계시들 중 어느 것도 우리는 취소하거나(abrogate) 또는 망각케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은 또는 비슷한 어떤 것으로 대치한다(substitue). 알라는 모든 일에 전능하시다는 것을 그대는 알지 못하느뇨? 그대는 천지가 알라께 속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너희들에게는 그 분 이외의 어떤 보호자도 원조자도 없도다(A Yusuf Ali 역)]]
 
최영길 역에 보면, 위 구절의 첫 번째 부분인 “이전에 계시한 문구를 취소하였거나 혹은 일부러 망각하게 했을 경우에”라는 말을 “어떤 말씀도 폐기하지 아니하며 망각케 하지아니하되” 라고 번역하여 정 반대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부분을 보면 “그와 동등한 말씀으로 대체하신다”고 하니 의미상으로는 대체한다는 말이나 먼저 것을 폐기하고 새것을 세운다는 말이나 같은 표현이기는 하지만 혐오스러움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고의로 반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꾸란의 “처음 계시와 나중 계시가 상호모순이 될 경우에는 나중 계시에 의해서 이전 계시는 자동으로 된다”는 교리다.(꾸란 2:106, 꾸란5:15, 꾸란13:39) 이것을 이슬람의 만수크(Mansukh)교리 라고 한다. 이 만수크 교리에 의해서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지니라."(꾸란2:256)라는 꾸란의 평화스런 메카 계시의 구절은 "이교도를 죽이라."(꾸란9:5)는 메디나 계시의 구절에 의해서 취소된 것이다.
 
4-3) 나스크(대체, Naskh)교리
보편적으로 진리라는 것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이슬람의 경전이라고 하는 무함마드의 계시인 꾸란은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진보되고 새것으로 대체된다는 특성이 있다. 이는 진리는 절대불변이라는 원리와 위배되는 것이지만 이슬람에서는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즉 모세에게 내린 계시는 모세 시대의 상황에 필요한 말씀을 주셨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당시의 상황에 필요한 말씀을 주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메카 시절의 계시는 메카의 상황에 맞는 계시였으며 메디나 시대에 비로서 온 인류가 영원토록 지켜야 하는 최후의 주장인 것이다. 그들은 이를 나스크(Nasikh) 즉 “대체” 교리라고 한다. 이는 ‘취소’ 만수크(Mansukh)교리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즉 A가 B에 의해서 취소(만스크)되었다면 B는 A를 대체(나스크)한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이 나스크(대체) 교리에 의해서 모세의 율법인 토라는 복음서인 인질(Injil)에 의해서 폐기 혹은 대체되었으며, 인질은 꾸란에 의해서 폐기되었다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 폐기된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을 폐기할 것인지 혹은 어느 것을 보존해야 할 것인지를 꾸란에 의해 평가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신•구약 성경을 확증하는 것이 꾸란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꾸란이 신•구약 성경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침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전의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라 그리고 ‘옳고 그름의 지침서’를 내렸노라 알라의 말씀들을 배반하는 자 그들에게는 엄한 벌이 있을 것이라 알라는 강하사 그들을 패배하게 하시니라. 천지에 있는 어떤 것도 알라에게는 은폐될 수 없노라.(꾸란3:4~5, 최명길 역)
 
 “인간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정사(正邪)를 구별하는 기준’을 내리시었다. 알라의 계시에 불신하는 자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알라께서는 전능하시며 악에 보답하신다. 알라께는 땅위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모두 숨길 수 없다.(꾸란3:4~5 김용선 역)
 
즉 신구약 성경의 내용 중에서 꾸란의 내용과 일치되는 것은 진리이므로 보존해야 하는 것이며 꾸란의 내용과 차이가 나는 것은 꾸란에 의해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해서 신구약 성경은 구란에 의해서 자동 폐기되었다는 주장이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이슬람 학자들은 신구약 성경을 꾸란과 함께 진리로 인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서로 둘 다 진리라고 하기에는 내용상의 차이가 많기 때문에 지금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변질된 것이므로 변질되지 않는 원래의 신구약 성경을 꾸란과 함께 진리로 인정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나스크(대체) 교리는 만수크(취소 또는 폐기) 교리와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 즉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은 성립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에 관한 적절한 설명이 있어 끌어 와 본다(꾸란의 이해, 한국외국어대출판부, 서울, 2010, pp.170~186). ‘꾸란의이해’의 그 저자는 꾸란연구 어려움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드는데: 1) ‘무타샤비하트(애매모호한 구절들)’(169쪽), 2)‘<대체> 원리에 의한 나시크와 만수크의 문제’(170쪽), 3) ‘29개 불가사의한 자음들의 조합 문제’(170쪽), 아래 인용 글월은 그 세 가지 문제들 중 두 번째 것에 대한 기술이다.]]
 
5)꾸란 연구 어려움: 대체 원리에 의한 나시크와 만수크 문제
5-1) 대채(나스크) 라는 이론의 도입 동기
꾸란 연구에서, 두번째로, 문제가 된 것은 <대체> 원리에 의한 나시크와 만수크의 문제였다. 나스크(대체)는 “어떤 것을 다른 것이 있는 장소에 놓다.” 라는 사전적인 의미이지만 꾸란학에서 이 어휘는 “꾸란에서 그 구절이 계속 존재하지만 그 구절의 법적 적용이 중지된다.” 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시크는 “오랜 법적 판결(Hukm)을 대체시키는 새로운 법적 판결”이고 만수크는 “새로운 법적 판결이 대체된 옛 법적 판결”을 가리킨다. 예를들면 수라 2:115(네가 얼굴을 돌리는 곳마다 알라의 얼굴이 있다.)은 수라 2:144b(네 얼굴을 알마스지드 알하람쪽으로 향하라.)에 의해서 법적 효력이 무효화된다. 이처럼 꾸란의 어느 구절이 다른 구절로 대체되거나 무효화된다. 그러나 어느 구절이 대체될 것인가에 대하여 꾸란이 명확이 언급하지 않아 꾸란 주석가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이하, 중략]
 
꾸란 연구에 있어 계속적으로 성가신 문제가 일부 꾸란에 대한 나스끄 문제이다. 나스크는 무언가를 취소’ibTāl, 무효화, 폐지’i‘dām, 대체izālah한다는 말이고 꾸란에서 나스크라는 말은 나중에 나온 법적 증거로 이전의 법적 판결(Hukm shar‘ī)을 대체한다는 말이다. 나시크는 아랍어에서 능동분사로서 대체시키게 하는 것이고 만수크는 수동분사로서 대체받는 것을 가리킨다. 꾸란 주석과 이슬람 법학에서 이 두 용어는 대체나 무효화된 꾸란 구절을 명시하기 위하여 사용된 개념이었다.
    본래 나스끄는 법과 관련된 용어이고 교리(‘aqīdah)에 대한 용어는 아니였다. 이슬람에서는 종교는 하나이고 법들은 여럿이라고 생학했다. 해당 구절의 법 판결Hukm이 되었던 상황이 달라지면 이전의 법 적용이 되었다. 상황과 시간이 바뀌어 사람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였다. 나스크는 법 적용이 대체되는 것이다. 대체(무효화)의 원칙은 다음 꾸란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수라2:106 „우리가 어느 구절을 대체하거나 잊게 하더라도 우리는 더 나은 것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을 제시할 거이다.”
 
수라16:101 „우리가 어느 한 구절을 다른 구절로 대체할 때 알라는 그가 보내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수라17:86 „만일 우리(알라)가 원했다면 우리가 너에게 내려준 것을 가져 갈 수 있다.”
 
수라87:6 „네가 잊지 않도록 우리가 너에게 암송하게 하겠다.”
 
무슬림 법학자들은 대체(무효와)의 법적 결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였다. 나시크와 만수크의 문제는 무슬림 움마[[공동체]]가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확장된 이후, 무슬림 법학자들과 꾸란 주석가, 하디스 학자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무슬림들 간의 법적 계약과 일상적인 행동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이슬람 법학(fiqh)이 발전하였지만 이제 막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문제도 도와야 했다. 고전 이슬람은 이슬람이 출발 당시부터 신적 와히에 전적으로 뿌리를 둔 종교-율법적 제도이었다. 유대교 제도의 핵심에 율법이 있는 것처럼 이슬람에서는 꾸란과 순나에 근거한 이슬람 율법이 있었다. 율법의 작업은 무함마드 사후 처음 2세기 동안 개별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율법은 알라가 준 법이라서 샤리아(Shariah)라고 불렸다. 특히 4대 칼리파 알리는 나시크와 만스크를 잘 모르는 사람이면 설교를 할 수 없다고 설교를 금지시킨 이후부터 이 문제의 심각성은 더 했다.
    알라로부터 온 메시지와 샤리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졌다. 첫째, 이슬람의 기본적인 메시지들은 무슬림들에 의하면 아담에서부터 무함마드까지 동일하게 유지되야 한다. 둘째, 샤리아는 시대마다 다양해져야한다. 꾸란 메시지들의 기본적인 요소는 알라가 한 분이고, 내세에 대한 책임과 예언자 직이었다. 알라의 모든 예언자가 그들 백성에게 이 세 가지를 항상 전달하여왔다. 그리고 꾸란에 의하면 예언자들이 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그들 공동체에 샤리아 법의 범규(Code)를 가져다 주었다. 이런 샤리아 전반에 대하여 대체 라는 새로운 이론이 후기 이슬람 학자들에 의하여 도입되었다.
 
5-2)나스크의 적용 예들: 까블라(기도 방향), 과부의 재혼, 전쟁과테러, 강제 개종
5-2-1)까블라(기도방향)
나스크의 원리는 이슬람 예배 의식에서도 필요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끼블라(기도의 방향)이었다. 메카에서 13년 동안 그리고 메디나에서 18개월 동안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바이트 알마끄디스(예루살렘의 사원)을 향하여 기도하였다. 후에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메카의 카아바로 기도의 방향을 바꾸라고 하였다. 꾸란은 이런 변화를 수라2:144에서 언급한다:
 
“여러 차례 우리는 네가(무함마드) 너의 얼굴을 하늘로 향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우리가 너를 기쁘게 할 기도의 방향으로 바꾸어 준다. 알마스지드 알하람al-amskid al-Harām(메카의 대사원)으로 너의 얼굴을 향하라”
 
무슬림들이 이슬람 초기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이 위 꾸란 구절에 따라 메카의 카이바로 기도 방향이 바뀌었다.
 
5-2-2)과부
또, 과부의 재혼에 관한 것에도 대체 이론이 적용되었다. 원래는 꾸란이 과부는 죽은 남편의 집에 평생 머물도록 권장했다:
 
„만일 너희 중 누가 죽어서 과부들을 남기면 그들 아내에게 1년간 옷과 재물을 주는 언약을 하고 그들을 쫓아내지 마라. 만일 그들이 떠나면 그들 스스로가 한 일에 너희들은 잘못이 없다”(수라2:240)
 
이 구절들은 다음 꾸란 구절(수라 2:234)에 의하여 대체되어 4개월 10일로 과부가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너희 중의 누가 죽어서 과부들을 남기면 과부들은 재혼하기 전에 4개월과 10밤을 기달려야 한다. 그들이 이 정해긴 기간에 다다르면 그들이 스스로 한 일에 대하여 너희들에게는 잘못이 없다.”(수라2:234)
 
위 구절은 꾸란 구절 순서로보면 뒤에 오는 꾸란 구절(240절)이 앞에 오는 구절(234절)에 의하여 무효화된 것이다.
 
5-2-3)음주와 이자
또 대체(무효화) 이론이 적용되는 사례로서 술 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이자 금지(riba)가 있다.
 
5-2-4)전쟁과 테러
이슬람 역사를 거치면서 대체 이론에 대한 정밀한 논의가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구체화 되었으며 이런 대체 이론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무슬림 학자들에 의하여 수 세기 동안 논의 되어왔다. 그러므로 대체 이론에 대한 분석은 이슬람 법 발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도 아주 중요하였다. 꾸란과 순나에 근거하지 않는 엉뚱한 대체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꾸란의 편집은 연대기적 순서를 고려하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이 꾸란의 연대기적 순서와 탄질(내려옴)의 점진성progressive revelation에 관심을 가졌다. 꾸란 구절을 보면 비무슬림들이 조롱할 때 „무함마드는 참아야하고 오직 경고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고 한 구절은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을 촉구하여 상대와 싸우거나 살해하라.”는 구절도 대체되었다. 전자는 주로 메카에서 무슬림들의 숫자가 적고 힘이 약할 때의 꾸란 구절이고 후자는 메디나에서 무슬림들의 수효가 많아지면서 알라가 내려준 구절로 이때는 적들을 치라고 했다. 대체이론은 연대기적 순서와 탄질의 점진성에 관심을 두었으나 범적적용은 논리Logic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논의되었다.
 
대체된 구절: 참으라는 구절
„말하라. (메카의) 사람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분명한 경고자일 뿐이다.”(수라22:49)
„그 문제에 대하여 너와 논쟁하지 말라.”(수라22:67b)
„우리는 그들에게 좋은 일을 서둘러할까요? 아니오. 오히려, 그들이 느끼지 못할 것이다.”(수라23:56)
„그들이 말하는 것에 인내하라.”(수라20:130, 38:17, 73:10)(이와 반대로 ‘싸우라’는 구절은 수라2:190이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을 서두르지 마라.”(수라19:84)
„그들에게 후회의 날을 경고하라.’(수라19:39)
 
대체한 구절: 싸우라는 구절
„전투(싸움, 교전)가 너에게 운명적으로 예정되었다.”(수라2:216)
„알라와 최후의 날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싸워라.”(수라9:29a)
„믿는 사람들아! 너희들 가까이에 있는 카피르[[불신자]]들과 싸워라.(수9:123)
„너희들을 대적하는 사람들과는 알라의 길을 위하여 싸워라.”(수라2:190) „너희들이 발견한 곳마다 무쉬리쿤[[불신자들]]을 살해하라.”(수라9:5)
 
[[ 카피르كافر, kāfir)는 알라를 믿지 않는자(unbeliever), 알라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믿거나 잘못 믿는자(disbeliever), 또는 진리를 고의적으로 숨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카피르들은 알라를 거부하거나 또는 알라의 진리를 숨기거나 부정하거나 은폐하는 자들이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와 유대인들을 카피르라 하고, 순니파와 시아파는 서로를 카피르라고 한다. 다른 무슬림을 카피르라고 단죄하는 실천은 타크피르(takfir)라 불리운다.
    반면에 무쉬리쿤(Mushrikun)은 우상숭배자 또는 다신론자를 가리킨다. 이슬람에서 쉬르크(shrik,  شرك )는 우상숭배 행위(죄), 즉 그 '단일' 신 알라 이외의 다른 것이나 사람을 신성시하여 경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문자적으로 그것은 알라와 나란히 놓여지는 '파트너들'의 설정을 뜻한다. 쉬르크는 단일신론('monotheism')의 덕에 반대되는 악덕이다. 쉬르크 라는 죄를 짓게 되면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다. 반드시 죽음의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카피르는 때로 쿠프르(kufr) 또는 쿠파르(kuffar)로 불리우는 반면 쉬르크는 때로 무쉬르크(Mushirk)또는 무쉬리쿤(mushikun)으로 불리운다. 
    어떤 이슬람 학자들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그 책의 사람들'(Ahl al-kitab)이라고 부르면서 이들을 자신들의 동료들인 믿는 자들로 간주하는 반면 대다수 다른 이슬람학자들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카피르로 간주한다. 예를들어 이븐 알-와하브(Ibn al-Wahhab)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카피르들이라는 것은 '무슬림들 사이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카피르들이라는 것에, 심지어 기독교인들을 카피르들로 간주하지 않는 자들조차 카피르들이라는 것에, 무슬림들은 만장일치의 의견을 지닌다' 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하게, 압둘 아지즈 빈 압둘라 빈 바즈(Abdul Aziz bin Abdullah bin Baz)는  다음처럼 주장한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카피르들이면서 동시에 무쉬리쿤들이다. 이들은 진리를 부정하면서 거부하기 때문에 카피르들이요 동시에 알라 이외의 다른 어떤 신들 경배하기 때문에 무쉬리쿤들이다'(영어위키페디아 ' infidel ' 항목 참조). 쉐이크 아마드 쿠띠(Sheikh Ahmad Kutty)와 다른 학자들은 이싸(코란의 예수)을 하나님의 아들로 섬기는 것 자체를 신성모독이요 카피르로 간주한다. 
    그런데, 실은, 이러한 무슬림들의 생각 그 자체가 신성모독 그 자체요 불경이요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므로, 하시려고 하시면, 어느 한 개인으로 되실 수 있음에도 이슬람의 경전, 코란은 이러한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거부하면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에게 어느 한 개인으로 되실 능력이 없으시겠는가? 코란에 따르면 이싸(코란의 예수)는 그 신(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아들)일 뿐이요 그리고 선지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코란의 이슬람에 특유한 것이 아니다. 현대의 대부분 유대인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땅에 사는 사람들 중 일부가 지녔던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예수님 당시의 어떤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다--아마 유대인 베드로 보다 먼저 이방인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아들로 믿었을 것이다. 당시 유대인보다 더 큰 믿음 가진 이방인을 예수님께서 확인해주셨기 때문이다(이에 관심이 있으면 사복음서를 천천히 읽어보라):

"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례미야나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16장13~17).]]



5-2-5)강제 개종
그런데 꾸란의 구절 간에는 여러 불일치를 보이는 사례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는 수라2:256과 이 구절을 대체시키는 구절 수라9:29이 있다.
 
„종교(헌신)에는 절대로 강요가 있을 수 없다.”(수라 2:256)
„알라와 최후의 날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알라와 무함마드가 금한 것을 금하지 않는 자들, 그리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않는 자들 즉, 경전의 백성들이 공손히 그들 손으로 인두세를 낼 때까지 싸워라.”(수라9:29)
 
위 두 구절을 보면 2:256은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고 하고서는 수라9:29에서는 경전의 백성(유대인과 기독교인 등)들이 공손히 그들 손으로 인두세를 낼 때까지 싸우라고 되어 있어 서로 모순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9장29절을 감추고 오직 2장256절만 가지고 다른 종교와 대화하는 것은 꾸란의 진실을 감추는 [[따끼야]] 행위가 된다.
 
„사람들아! 우리가 너희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다. 너희들이 서로 알아가도록 우리가 너희들을 백성과 부족으로 만들었다. 알라의 눈에는 너희 중 가장 많이 베푸는 자가 가장 알라를 두려워하는 자이다.”(수라49:`13)
„믿는 자들은 카피르들을 보호자(아울리야)로 삼지말라.”(수라3:28)
„너희 종교를 조롱하는 자들을 보호자(아울리야)로 삼지마라.”(수라5:57b)
„믿는 자들아! 카피르들을 보호자로 삼지 마라”(수라4:14a)
 
위 꾸란 구절에서 믿는 자들이란 무슬림들을 가리키고 무슬림들은 카피르(이슬람법이나 실천 사항을 거부하는 자)나 이슬람을 조롱하는 자를 보호자(친구, 협력자)로 삼지 말라고 한다.
 
5-2-6) 혼인
이슬람 법학은 위 대체 이론에 가장 넓은 여지를 남겨 주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구란은 물론 하디스까지 대체 이론이 확대되어 구란 구절이 다른 꾸란 구절을 대체하고 하디스 구절이 꾸란 구절을 대체하며 하디스 구절이 다른 하디스 구절을 대체하고 꾸란 구절이 하디스 구절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Faruq Sherif, A Guide to the Contents fo the Qur‘n, 60).
 
„간음한 남자는 간음한 여자나 무쉬라카(알라 이외에 다른 우상을 알라의 동반자로 섬기는 여성)와 혼인할 수 있고 간음한 여자는 간음한 남자나 무쉬리쿤(알라 이외에 다른 우상을 알라의 동반자로 섬기는 남성)과 혼인할 수 있으나 믿는 자들(무슬림들)에게는 이것이 금지되었다.”(수라24:3)
 
그런데 동일한 24장의 32절이 위 내용을 대체한다.
 
„너희들 중 배우자가 없는 자(처녀이거나 한 번 혼인했어도 혼자가 된 남녀: ’ayāmā)와 혼인하라.”(수라24:32)
 
5-2-7)사탄의 구절
그러나 아래 구절은 사탄이 무함마드의 꾸란 속에 뭔가를 집어넣었는데 알라가 그것을 알고 꾸란 구절에서 빼내어 주었다는 내용이다. 꾸란에 사탄의 말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너 이전에 메신저나 예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가 낭송했을 때 사탄이 그의 낭송 속에 (뭔가를) 던져 넣었다. 알라는 사탄이 집어넣는 것을 삭제하였다. 그러고 나서 알라가 꾸란 구절들을 확인해주었다.”(수란22:52)
 
알라 이외에 이들 세 우상을 예배하였던 당시 사람들이 „중개자로서 이들 세 우상이 알라에게 받아들여지느냐?”고 물었다.
 
„너희들은 알라트와 알웃자를 생각하고 있었는가? 다른 세 번째 것으로 마나트를?”(수라53:19~20)
 
위 53:19~20절에 이어져서 무함마드가 낭송할 내용을 사탄이 끼워 넣었따고 보고 그 내용은 곧 철회되었다고 했다(Faruq Sherif, 앞의책, 60).
 
 
6)꾸란과 순나 사이의 나스크(대체)원리 논쟁
그런데 „현세와 내세에 기쁜 소식이 있는데 알라의 말들에는 대체란 있을 수 없다(수라10:64a)”라고 한 꾸란 구절이 위 대체 이론과 어던 관계가 있는지 꾸란 주석가들은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꾸란 본문에서 꾸란의 말들이 대체(변화)될 수 없다고 했는데 대체 이론은 꾸란 어느 구절이 다른 구절로 대체된다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 논리이다. 알따바리는 알라가 내려준 꾸란 중에서 법적인 내용만 대체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고 신앙의 교리는 이런 대체 원리에서 제외하였다.
    나중에 대체 원리는 꾸란과 순나 간에도 적용되었다--순나란 무함마드의 말,행동, 묵인한 것을 기록한 책(무함마드 언행록)이다. 한 꾸란 구절이 다른 꾸란 구절을 대체시키고 한 순나의 구절이 다른 순나의 구절을 대체시켰다. 그런데 꾸란 구절과 순나의 구절 간의 대체원리 적용은 논쟁의 여지를 남겨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샤피이는 꾸란과 순나간의 대체원리 적용을 완전히 거부하였다. 꾸란과 순나 간에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펴면서 순나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꾸란에 이어 두 번째 주요 근거로 순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는 꾸란에 의하여 순나가 대체(무효화)될 수 없다고 하면서 만일 순나가 꾸란에 의하여 대체되면 무함마드가 제2의 순나를 제시하였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6-1)나스크의 3가지 방법
무슬림 학자들이 주장하는 나스크의 방법에는 고전적인 3가지 방법이 있었다.
 
6-1-1)나스크 알후큼 두나 알 틸라와naskh alĦukm dūna alŧilāwa(대체 replacement):
꾸란에 어느 관련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이 법적 판결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 원리는 무슬림들이 실제 적용하는 나스크의 우너리이다. 그런데 이런 원리를 적용할 꾸란 구절이 다른 꾸란 구절을 대체시키고 어느 순나 구절이 다른 순나의 구절을 대체시키는 것은 대부분 법학자들이 동의하였다. 그런데 꾸란의 구절이 순나의 구절을 대체시키거나 순나의 구절이 꾸란의 구절을 대채시는 것은 만장일치를 얻지 못하였다.
 
„예언자야, 우리는 네가 신부 값을 지불한 여자들, 전쟁 중에 알라가 너에게 맡겨진 노예들,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삼촌과 외삼촌 그리고 고모의 딸들은 너에게 합법적이다(수라33:50) „
너(예언자 무함마드)에게는 더 많은 아내를 얻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너의 아내들을 다른 사람과 교환해도 안 된다. 심지어 그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움으로 너를 유혹한다고 하더래도, 이것은 너의 노예 여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수라33:52)
 
그러나 50절과 52절이 서로 보완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52절이 50절을 무효화시켰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52절은 메디나로 이주한 다른 친척들과 혼인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6-1-2)나스크 알 후큼 와 알틸라와nasḵẖ alHukm wa-‘l-tilāwa(생략 omissions):
법적 판결ruling에는 사용되지 않고 해당 구절이 꾸란에 안 나온다. 그러나 그 해당 본문은 하디스나 전승에서 볼 수 있다. 무스하프(codex)에 해당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전하였다. 10명과 혼인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꾸란에 기록되었었다. 그러고 나서 5명으로 대체되었고 알라의 메신저가 죽었다(무슬림 하디스, 5권 3421).”
 
6-1-3)나스크 알틸라와 두나 알후큼naskh al-tilāwa dūna al-Hukm:
해당구절이 무스하프에 없었는데 타스시르(주석)에만 있었다. 이것 역시 꾸란에만 적용되는데 이 원리를 인정 안하고 실제 사용에도 추천하지 않았다. 현재 꾸란에 이 내용이 없어 이 이야기의 진실이 불확실하다:
    „이븐 압바스가 전하였다. 오마르 븐 알캇탑이 알라의 메신저가 섰던 설교단에 앉았다.” 진실로 알라가 진리와 함께 무함마드를 보냈다.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그 책을 내려 주었다. 돌로 치라는 구절도 그에게 보낸 책 속에 들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암송하였다. 알라의 메신저는 결혼 중 간통한 남녀는 죽을 때까지 돌로 치라고 하였다. 우리 또한 돌로 치는 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그것을 잊을까봐 염려된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알라의 책에는 돌로 치는 벌을 주는 것을 찾을 수 없어요.: 증거가 입증되거나 임신하였으면 돌로 치는 것은 간통을 범한 결혼한 남녀가 받을 벌이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책에 근거하여 간음한 사람들(유대인과 무슬림들)을 돌로 쳐서 죽였다.
 
위 세 가지 방법 중 첫 번째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었으나 세 번째 방법을 택한 사람들은 드물었다. 샤피이는 간음한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을 위 두 번째 방법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실제 법 적용을 안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들이 너에게(무함마드) 술 취하는 것과 도박에 대하여 묻는다. 이 두 가지에는 중죄가 있다.”(꾸라2:219)
 
위 꾸란 구절의 나스크(대체할 구절)은 수라4:43이다.
 
„믿는 네가 술에 취하면 기도처 근처에 오지마라. 네가 말하고 있는 것을 네가 모르니 ... „
 
이 구절은 수라5:90절에 의하여 다시 대체되었는데 그 내용은 알코올의 소비를 완전히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너 믿는 자가 술 취하고 도박하고 우상 숭배를 위하여 도살한 짐승 그리고 화살로 점치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리고 수라 2:150은 기도의 방향을 예루살렘으로 하였던 순나를 대체시켰다. 또, 간음한 자를 처벌하는 벌로서 돌로 때려 죽이라는 것을 수라24:2이 대체시켰다.
 
„간통한 남녀에게 100대를 때려라.”(수라24:2)
 
 
6-2)나스크의 두 가지 또는 네 가지 의미
6-2-1)아랍어 나스크의 의미 두 가지
아랍어에서 나스크의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거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초기 꾸란 구절이 다른 구절에 의하여 더 분면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변화라는 의미인데 모든 문법학자는 나스크라는 단어 뜻에 ‘변화’라는 의미가 있다고 동의했다. 무슬림들은 꾸란과 하디스(무함마드 언행록)를 법적 근거로 삼았으므로 나스크라는 용어는 아장 중요한 법적 용어가 되었다. 그래서 나스크의 개념이 두 가자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꾸란을 해석하는 주석exegetical 차원에서 또 다른 하나는 이슬람 법학자들의 법적Legal인 면에서 였다.
 
6-2-2)초기 꾸란 주석가들이 이해한 나스크 의미 네 가지.
초기 꾸란 주석가commentator들은 나스의 의미를 다음 4가지로 이해하였다.
    첫째, 꾸란 구절의 구체적인 의미를 가리키는 명확한 설명(taḵẖsis, spercification: 꾸란에 나오는 일반적인 주제를 하디스에서 자세히 설명함)이다. 이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라는 말의 반대이다. „네가 무쉬리쿤을 만나면 그를 죽이고 붙잡고 포위하고 모든 정탐하는 곳에서 기다려라.”(수라9:5) 이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만일 다른 구절에서는 경전의 백성people of the book을 이 부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이것은 타크시스가 된다.
    두 번째는 제한(taqyīd) 꾸란에 나온 한 가지 문제를 하디스에서 제한한다)의 의미이다. 자카는 무슬림들로부터 거둬들여 수라 9:60절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것으로 제한된다.
 
„종교 구빈세(자카)는 가난한 자, 어렵게 사는 자, 자카를 거둬들이는 자, 노예를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빚을 진 자, 그리고 돈이 필요로 하는 여행자들에게 준다”(수라9:60)
 
    세 번째 의미는 제외exception의 의미이다. 꾸란은 무슬림 남자들에게 여떤 여자와도 결혼해도 좋으나 그들의 어머니, 누이, 딸, 질녀는 제외된다고 하였다. 꾸란은 일반적으로 혼인의 법칙을 대체시키지 않으나 근친 상간 혼인의 가능성을 제외시켰다.
    나스크의 네 번째 의미는 무슬림들 사이에 일어나는 절박한 상황과 관련된다. 이를테면,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이슬람법적으로 볼법이다. 그런데 누군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굶어 죽을 염려가 있으면 이 고기는 생존을 위하여 먹어도 된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상황이 종료되면 같은 고기를 먹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슬람 법학자들에게 나스크의 의미는 이전의 법을 새로운 나중 법으로 대체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6-3)나스크 교리에 관한 논란
그러나 나스크는 모든 무슬림에게 결코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못하였다. 나시크의 구절과 만수크의 구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슬람 학자들마다 달랐다. 순나에 의하여 꾸란 구절이 무효화(대체)되는 것은 아쉬아리, 무으타질라, 법학자 말리크 그리고 아부 하니파들이 지지하였으나 샤피이 학파의 대부분 학자들은 이 견해를 거부했다. 알샤피이는 이걸 받아들이면 한 하딛스가 다른 하디스를 대체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고 하였다. 한발리파는 하디스에 의하여 꾸란 구절이 무효화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아쉬아리파와 무으타질라파와 대부분 법학자들은 꾸란에 의하여 하디스가 무효화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시아파의 수효는 무슬림 공동체의 2.5% 정도인데 그들은 무함마드 이호의 이맘(지도자)들은 무류(잘못이 없다)하다infallible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맘Imam이나 아야톨라ayatollah가 꾸란의 법들을 변화시키거나 무효화시키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수라2:106절을 시아파들이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순니파들은 말한다.
    칼리파 알리는 무효화(대체)를 모르고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설교를 위하여 설교단에 오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시아파들이 꾸란을 잘못해석하여 그들의 이맘에게 터무니없는 권한을 주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순니파들은 비난했다. 이것은 꾸란의 완벽함과 완전함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꾸란의 무효화(대체)에 대한 찬반 의견에 따라 학자들이 나뉘었다. 이븐 살라마ibn salamah, 알바그다디albghdadi 그리고 알 샤피이al-shafi‘i는 꾸란의 대채(무효화) 이론을 찬성한다. 이븐 살라마는 죽은 남편의 아내는 1년 동안 기다린다고 한 꾸란 구절은 나중에 이 기간이 다른 꾸란 구절에 의하여 4개월 10일(2:235)로 대체 되었다고 하였다. 알바그다디는 이 구절과 관련하여 무함마드의 동료들의 의견을 인용하였다. 이것을 이븐 압바스는 4개월 10일 동안으로 규정된 꾸란 구절로 대체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알샤피이는 “알라가 메신저에게 기도 방향을 예루살렘에서 바꾸라고 명하였다. 이 기도 방향이 무효화되기 전에는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무효화되었고 마스지드 하람으로 향하는 것이 의무가 되었다.” 라고 했다. 수라2:106과 수라16:101이 꾸란의 대체 이론과 전혀 아관이 없다고 생각한 학자들도 있었다. 유수프 알리yusuf ali와 알마우두디al-maududi가 바로 그들이었다. 알마우드디는 이 꾸란 구절들이 무슬림들의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게 한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꾸란은 말하기를 이전의 성경은 알라가 보냈고 꾸란 역시 알라가 보낸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왜 꾸란이 이전에 보낸 성경과 다른 명령을 주었는가? 어떻게 동일한 알라가 다른 시기에 다른 명령Command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꾸란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그들에게 보내준 가르침의 일부를 잊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알라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망각된다는 말이 가능한가? 만일 그렇다면 꾸란이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암송되었다가 나중에 꾸란 책으로 편집되었는데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들의 기억력은 오나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유대인들과 기독교인)이 진리에 이르기 위하여 반대를 한 것이 아니고 말썽을 일으키기 위하여 반대한 것이 분명하다. 그때 알라가 그들의 반대에 대하여 답하였다. 나의 주권과 능력은 제한이 없다. 나는 나의 것을 다시 보낼 수 있고 그것을 잊어버리게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와 동등한 것 혹은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알마우두디는 꾸란에서의 대체 이론을 지지하지 않았다. 대체 이론은 꾸란 구절의 오해와 잘못된 개념 설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꾸란이 내려오는 과정에 대하여 헛갈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알라의 종교는 이슬람이다. 알라는 이 세상에서 정의 구현을 위하여 예언자 무함마드를 통하여 꾸란을 보냈다. 일부 학자들은 무함마드가 대체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칼리파 알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대체이론을 지지하는 어떤 하디스도 없었다는 것이다. 대체 이론은 지나간 무슬림 학자들의 잘못된 개념 설정으로 인하여 오늘날까지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나스크의 세 가지 방법론적 원리는 무슬림들 모두에게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John Burton, The Collection of the Qur’an, cambridge: Cambrigde University Press, 46). 대부분 무슬림들은 2가지 원리만 인정했다. 쿠파인들에게 꾸란의 새로운 법률적용ruling은 꾸란이나 순나에 의하여 이미 설정된 법률을 대신했다. 샤이피와 그의 추종자들은 어느 꾸란 구절이 다른 꾸란의 구절을 대신할 수는 있으나 꾸란 구절이 순나의 구절을 대신한다고 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나의 구절이 다른 순나의 구절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순나의 구절이 꾸란의 구절을 대신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공개적으로 암송하는 것을 꾸란이라 부르고 알라는 꾸란을 통하여 그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낭송되지 않는 것은 순나이었다. 꾸란과 순나 둘 다 무함마드가 중개를 하였다. 이 두 가지에서 나시크(대체시릴 사람)는 알라 뿐이다. 알라가 시작하고 무함마드는 오직 전달의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수라 2:106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알라가 나중 내려온 구절이 먼저 내려온 구절보다 더 우수한 구절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내려온 구절보다 더 나은 법 적용ruling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알가잘리al-gẖalzli는 꾸란 구절은 꾸란 구절이나 순나에 의하여 무효화 된다고 주장했다. 꾸란과 순나 둘 다 알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7)대체(나스크)된 코란 절들의 목록
[[ 마호멧이 지브릴 천사를 통해 받은 알라의 계시들(코란)과 그리고 마호멧의 언행록인 하디쓰가 전체로 묶어져 하나를 이룰 때 필연적으로 그 안에서 생겨나는 절들 상호간의 모순들로 인하여 취소된(만수크) 어느 한 절을 다른 한 절이 대치할(나스크)한다면, 어떤 절들이 취소됐으며 그리고 어떤 절들이 대치됐을까? 중요한 것들은 논의 과정에서 이미 모두 예시됐다. 그러나 취소된 절과 대치된 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표가 있어 가져와 본다(여기 사이트의 정확한 글을 클릭한 후, 위키이슬람의 관련항목을 클릭!)
 
8)결론: 그러나 일점 일획도 취소되거나 바뀌거나 대체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코란의 한 절 한 절은 알라의 계시들(코란 2:106, 13:39, 16:101, 17:85-86, 87:6-7) 그 자체에 의해 취소되어 다른 절로 대치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어느 한 절의 일점 일획도 취소되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 될 수 없을 뿐더러,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며, 그리고 그 효력이 중지될 수도 없다. 알라는 변덕스러울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러한 변덕을 부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5장17~18절, 개역).
 
‘폐하지 아니하고 완전케 한다’는 말은 헤겔의 변증법적인 지양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이슬람의 취소(만수크)와 대체(나스크)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 안에 이전의 모든 율법이 완성 실현되어 나타나며, 세상 만사가 다 그대로 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만약 그 누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첨삭한다면 그는 죽어서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도 재앙이라는 재앙은 다 맛 봐야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내가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시리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신약, 요한계시록22장18~19절, 개역)
 

 
만수크와 나스크 동영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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