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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기만술(타끼야)와 흰 모자(따끼야) 



타끼야(기만술, dissimulation, taqiyya, تقيهَ )와 따끼야(이슬람 모자, skull cap, Ṭāqiyya, طاقية)은 그 발음과 문자가 비슷한데서 보여지듯이 아주 밀접하게 관련될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속이며 위장하는 기만전술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교리(
‘aqīdah)로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교리(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실천 방식(예전禮典), 그래서 하나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만약에 아래에서 언급될 것처럼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따끼야를 쓰고 있다면 자살 폭탄 테러는 타끼야 교리의 고유한 실천 방식들 중의 하나이며 그리고 따끼야는 그것의 상징일 것이다. 상대를 속여 위장 기만하지 않고서는 테러를 성공 할 수 없으며,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따끼야를 머리에 대부분 쓰고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을 코란과 하디쓰가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다른 종교에는 없는, 그 자체로 독특한 하나의 이슬람 정체성(Identity)이 될 것이다. 


1)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따끼야(이슬람 모자, Skull Cap 스컬 캡) 

먼저, 따끼야와 관련하여 이슬람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사례를 기억 해 낼 필요가 있다. 빈 라덴 휘하의 중동 이슬람 테러리스트 4 명이 2001년 5월 30일 재판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1998년 8월 7일 224명의 민간인을 죽였던, 아프리카 있는 미국 대사관 두 곳(탄자니아의 다르 엣 쌀람과 케냐의 나이로비)의 폭탄 테러범들이었다. 문제의 재판 당시 이들 테러범들 가운데 빈 라덴을 포함한 13명은 여전히 잡히지 않은 도주의 상태에 있었으며 그리고 재판 받았던 4 명의 테러범은 2013년 현재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런데 따끼야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곤혹케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들 테러범들이 특히 법정에서 자신들의 둥글고 흰 모자(따끼야)를 쓰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사건이었다. 재판 현장을 그려 낸 우측 위 사진을 보라(사진촬영은 허락되지 않음). 두 명이 따끼야를 쓰고 있지 않은가? 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불에 태워 죽인(까많게 타죽은 시체를 보려면 아래 동영상 클립을 보세요) 이들 태러범 4명은 자신들의 종교 곧 이슬람이 자신들더러 그러한 끔찍한 살인 공격(지하드)를 감행하라는 신성한 의무를 부여 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실, 따끼야가 테러리즘을 상징하곤 하는 사건들을 우리는 직•간접으로 자주 경험한다. 물론 오사마 빈 라덴이 썼던 이슬람의 그 흰 모자(터번)가 상징하는 테러리즘과 인종살육이 따끼야를 쓰고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모든 무슬림을 상징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비록 죽이라는 명령이 코란에 알라의 계시로 주어져 있다고 하더래도 말이다: 

‘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참회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함이니라 ’(꾸란 9:5) 





2)드루즈인들의 타끼야(기만술)와 그리고 따끼야(드루즈 모자) 

 
다음으로 우리는 드루즈(Druze) 이슬람의 스컬 캡(따끼야) 전통을 끌여 들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따끼야(이슬람 모자)는 이슬람의 타끼야(위장전술)에 잘 들어 맞기 때문이다. 독특한 따끼야 전통을 가지고 있는 드루즈들 이슬람은 카멜레온(Chameleons)처럼 절묘하게 자신들을 위장한다. 아랍어로 두루즈(Durûz دروز)로 알려진 이들은 스스로를 무와히딘(Al-Muwaḥḥidīn الموحدين‎)이라고 부르는데, 무와히딘은 단일신론자들(Monotheists), 즉 신의 단일성을 믿는 자들(문자적으로는 유니테리언 unitarians)을 뜻한다. 이들의 사제는 우깔(Uqqal)이라고 불리우며 그 여신도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무지한 자들’이라고 불리운다. 드루즈인들은 헤르몬 산 기슭과 베이루트와 시돈 배후 산악지대의 레바논에 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 쪽에서는 북부 갈릴리와 갈멜 산 도시들에 몰려있다. 이들은 골란고원과 시리아에도 있으며 그리고 세계 도처에 여러 코뮤니티들이 있다. 드루즈인들의 전체 수효는 수 백만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그들을 진짜로 광신도 무슬림 테러리스트들로 오인하게 만든다. 
      ‘ 비록 드루즈인들이 11세기 이집트에서 생겨난 이슬람의 계통의 사람들이기는 해도, 이들은 어떤 다른 종교와의 연결고리도 부인한다. ... 드루즈인 자신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인도에 있다고 믿으며, 전능한-단일-신(삼위三位의 하나님이 아님)과 윤회라는 인도 고유의 개념들을 공유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인도-아리안 족 일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Antonio Hermandez, My Kingdom for a Crown: An Around-the-World History of the Skullcap and its Modern Socio-Political Significance, p.33).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자신들의 외부 또는 내부에서의 그 어떤 개종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만큼 속임수에 능하다는 말이다. 오늘날 자신들에 대한 자긍심이 더 강해졌기는 해도 드루즈인들은 그 어떠한 종교이든 자신들을 둘러쌓고 있는 주류 종교인들로 위장하는데에, 카멜레온처럼, 능수능란한다.[우리나라의 신천지 교도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유대인들의 회당, 기독교 교회, 조로아스터인들의 불 사원들, 그리고 무슬림 모스크들에서 기도한다. 특히 순니와 시아파 몇 몇 다른 무슬림들에 의해서도 행해지는 이것이 타끼야(taqqiyah, 동화Simulation에 반대되는 Dissumlation기만 또는 위장)라고 불리운다. 다른 종교로 위장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가슴에 살아있는 진짜 신앙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외부]를 둘러 쌓고 있는 종교와 그 관습을 따른다.’(위의책, p.34). 내가 보기에는 미국 현 대통령 오바마 역시 이런 위장술에 능하다. 기독교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는, 대부분 아랍 무슬림 국가 출신의 테러범과 그 용의자가 갇힌 쿠바 관타나보 수용소의 폐쇄를 선거 공약으로 내건 오마바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행한 첫 일들 중의 하나가 쿠바 관타나모 테러범 교도소에 갇힌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석방시켜 귀국시킨 일이었으며(관련기사클릭) 그리고 지금도 의회에 줄기차게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무슬림들이 오마바를 자신들과 동류인 무슬림으로 보고 있으며, 그러기에 어떤 무슬림은 자신의 신, 알라에게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공개 인터뷰까지 했다. 나는 그 무슬림의 인터뷰를 티브이에서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타끼야(위장전술)에 카멜레온처럼 능한 드루즈인들에게는 이슬람의 은밀한 종교예법인 스컬 켑(Skull Cap, 머리 덮는 모자) 전통이 있다. 이들 드루즈인 모두는 깊은 의미를 지닌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의미를 모르는 스컬 캡을 쓴다. ‘소수의 유대인 중개상인들이 드루즈인들의 스컬 캡들을 팔러 다닌다. 나[Antonio Hermandez]는 드루즈인들의 스컬 캡을 봤는데, 그 스컬 캡들은 흰색의(우측사진 참조) 또는 상아빛 색의 명주천으로 되어있었다. 유대인 중개상인들은 그것들을 드루즈 킾펏(Kippot)들 또는 드루즈 야르묵(Yarmulke)들이라고 불렀다--[유대인들의 스컬 캡은 깊파 또는 야르묵 이라 불리운다]. 이스라엘에 있는 드루즈 모자들 중 많은 것이 희미한 가을단풍 빛깔의 색조를 띤다. 그런데, 우리는 무슬림, 힌두인,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인들의 모자(스컬켑)를 쓰고있는 드루즈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 드루즈인이 쯔케또(Zucchetto, 천주교 신부들이 쓰는 모자) 쓰고 있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에 놀란다.—아마 쯔케토도 자신들의 머리에 드루즈인들이 썼을 것이기는 해도 말이다. 드루즈인들이 이토록 은밀해서 우리들은 그들의 스컬 캡 전통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했는지를 모르며, 그리고 드루즈인들의 스컬 캡들이 그들 자신들에 의해, 「드루즈 스컬켑」이외의 그 무엇이라 불리우는 지 조차 모른다’(위의책, 34쪽). 그러나 드루즈인들의 주변에는 무슬림들이 그 누구보다 많으므로 그 어떤 모자보다 이슬람 스컬켑 곧 따끼야를 더 많이 쓸 것이다.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무슬림들은 기도할 때나 메카 순례 때 ‘따끼야’ 라고 하는 모자로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가리기때문이다.  무슬림들이 어떻게 따끼야를 통해서 라마단 기간 동안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일상생활 하는 지를 아래 동영상을 통해서 보라!



3)기도 할 때 남자(와 사제)가 머리에 모자를 쓰는 고대 동방 이교도의 관습을 폐하는 성경.
 그러나, 기도할 때 남자들은 머리를 그 무엇으로도 덮지 말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5~7) 
 
그래서 남자의 경우에는 기도나 예언 할 때 스컬 캡(Skull cap, 모자)으로든 다른 무엇으로든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베일 등으로 가려야 할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유대교인들은 기도 이외의 시간에도 머리에 킾파(Kippa-כּפּה)를 항상 쓰고 있으며 그리고 교황과 추기경과 주교 등 천주교 성직자들 역시 예전을 집례 할 때는 쯔케토를 쓴다. 묘하게도 정통 유대인들은 그것으로 머리를 가리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우측 아래 사진 →) 반면에 천주교 주교들은 그것으로 머리를 가렸다가 벗으므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스컬 캡을 머리에 쓰는 것 자체만으로는 유대인들과 천주교 주교들의 정체성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 할 때 남자가 무엇으로 머리 덮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불손한 행위이며, 하나님을 욕보이는 신성모독이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상징하므로 무엇으로든 은폐되서는 안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어떤 형식의 모자이든 쓰지 않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기본 자세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그런데 천주교 성직자들이 기도 할 때 모자(쯔케토, Zucchetto →)를 쓰는 전통이 유대인들에게서 빌려 온 것이라면, 유대인의 그 전통은 어디서 언제 생겨났는가? 외부 전통에서 빌려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족장시대부터 생겨난 내부전통인가? 아니다. 안토니오 헤르난데즈에 따르면, 그 전통은 외부 곧 바빌로니아인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 본래, 자신들의 머리들을 스컬 캡으로 덮었던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관습을 빌려 와서, 믹바앗트(Mig baa’at)라고 불리우는 미츠네펫(Mitznefet)을 머리에 썼다 ‘(Antonio Hermandez, 위의책, 37쪽) 
 
그렇다면 또 이슬람 모자의 전통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이슬람의 경전, 코란이 성경 신구약에서 자신의 내용 70%를 빌려 왔던 방식과 비슷하게 이슬람은 유대 전통에서 그 관습을 빌려 온 것일까? 만약 유대인들의 스컬 캡 관습이 바빌로니아인들의 그것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면, 설령 이슬람이 유대교를 모방했다고 하더래도, 이슬람 스컬 캡 전통은 근원적으로 바빌로니아인들의 스컬 캡 전통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인들은 이슬람이 발생하기 천 년 여 이전에 살았으므로, 무슬림들이 전혀 아니다. 따라서 이슬람의 스컬 캡 전통 역시 온전히 외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기원들 중 최초의 것은 안토니오 헤르난데즈에 따르면 바빌로니아인들 관습과 마찬가지로 수메르인들의 그것이다: 

‘ 오늘날 이라크사람들은 무슬림의 일상적인 스컬 캡 스타일들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들의 조상들, 수메르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은 흥미로운 그들 자신의 어떤 스컬 캡들을 지녔다. ... 문명을 건설한 이들 두 건설자들은 맨 처음으로 만들어진 그 스컬 캡들을 아마 지녔을 것이다. 그 문명의 이들 건설자들이 마찬가지로 손으로 정교하게 만든 헤드기어(Headgear, 머리장식물)를 만든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많은 조상(彫像, Statuary), 베이스 부조(bas relief), 그리고 심지어 회화 증거물이 있다. 후에 인도-이란과 중국 스컬 캡과 그리고 스콧틀렌드 콜리 밀집 모자들(straw Collie hats)의 영감을 제공했던 사람들 역시 이들 수메르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이었을 것이다. ‘(Antonio Hermandez, 위의책, 32쪽) 
 
그런데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이슬람 스컬 캡 곧 따끼야(모자)를 기도할 때 머리에 쓰는 것은 오로지 순나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멧(무함마드)는 흰 터번을 썼을 것이라고 믿고 '무함마드를 모방하려고 따끼야를 쓴다. 무함마드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의 행위를 모방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 무슬림들은 다양한 따끼야와 페즈 모자(fez hats)들과 그리고 다른 헤드기어들을 쓴다'(영어 위키페디아 타끼야(TAqiyah (cap) 항목 참조). 그러나 이들 무슬림 스컬 캡 전통은 모하멧과 그 동료들의 것이었다고 무슬림들이 믿고있는 흰 터번들로부터 유래한 것도 아니며, 코란과 하디쓰와 순나로부터도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언급된 것처럼, 단지 고대 동방 이교도들의 스컬 캡 관습을 그대로 온전히 따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발굴된 아카이메니안 아르탁세륵세스 2세(주전 404~359, Achaemenian, Artaxerxes) 치세의 Apandena Stair 유적 부조에서 우리는 ‘위쪽이 둥근, 펠트천으로 된 챙없는 모자’(felt bonnets)(Millia Davenport, The Book of Costume 제1권, p.28)를 쓴 페르시안/메디안 남성들을 본다(우측 위 사진 참조 →)주전 4세기의 바로 이 챙없는 모자가 이로부터 천 년이 지난 주후 14세기 이집트의 말룩(Maluk)에서 발견된 ‘평평한 위가 둥글게 아래로 내려오는’(이슬람백과사전 제10권 614쪽a; 13권, Ṭāḳiyya, 533쪽b) 이슬람의 흰 스컬 캡(따끼야, 우측 아래 사진 →)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챙없는 모자를 비교해 보라. 그 외형이 너무도 비슷하지 않는가? 따라서 이슬람 스컬 캡 전통은 이미 천 여 년, 아니 훨씬 그 이전의 동방관습을 계승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E.J.Brill(1986년)에 의해서 편찬된 이슬람백과사전(전13권)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 따끼야는 본래 페르시아인의 낱말이며 그리고 페르시아 터번(Turban)이다. 불어의 또크(toque)와 스페인어의 또까(toca)도 이 페르시아어 따끼야와 아마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따끼야 라는 말은 그것이 평편한 위를 지니는 둥근 캡(cap)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을 때인 주후 14세기(이슬람력 8세기)에 이집트의 맘룩(Mamlūk)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그랬던 것이 나씨르 파라지(al-Nāṣir Faradj) 통치 하에서 높이가 1/6 엘(ell, 1엘은 45인치)에서 2/3엘로 길어지면서, 아마 고대 이집트 모델의 영향으로 평편한 윗 부분이 둥근지붕처럼 볼록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서카시안(Circassian) 따끼야 라고 불리운다. 에로틱하기 때문에 이집트 여인들은 이것을 모방했다고 말해지며 그리고 이집트 동쪽으로 퍼져 나간 것도 이 모양이었다. 이로부터 가운데가 볼록한 것(barrels), 원뿔, 그리고 소위 일각수 등 여러 모양이 파생된다.’(이슬람백과사전 제10권 614쪽a; 제13권, Ṭāḳiyya, 533쪽b) 

따기야 라고 하는 말 자체가 고대 동방 후기 페르시아어였다는 것이다. 이런 페르시아 고어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어는 그대로 빌려와 그것을 따끼야(Ṭaqiya)로, 파키스탄 우르두어에서는 토피(Topi)로, 터키어에서는 페즈(Fez)로,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이슬람 상인들은 쿠피(Kufi)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사적 전개 맥락에서 확실해지는 것은 이슬람 모자들은 실로 고대 동방 이교도들의 스컬 캡 전통 자손들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들 자손에 알라의 그 예언자 모하멧과 그 동료들이 머리에 썼던 흰 터번이 속한다. 뿐만 아니라, 정통 유대인들이 지금 머리에 쓰고 있는 것도, 그리고 교황을 필두로 일부 천주교인들이 쓰고 있는 것도 모두 다 이교도 동방 스컬 캡의 자손들인 것이다. 메드레인즈와 밀러 역시 자신의 성서시대 사람들의 생활 백과사전에서 비록 성경에는 모자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기는 해도, 사제들은 몇 가지 류형의 터번들을 사용했으며 그리고 이스라엘 남자들 역시 특별한 경우에 머리에 무얼 썼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모자들 또는 다른 모자 장식품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으며 그리고 바빌론 그 유수 이전에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터번의 몇 몇 류형은 사제들에 의해서 사용됐으며 그리고 군사들은 헬멧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남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분명히 어떤 것도 머리에 쓰지 않았다. 검은 오벨리스크(The black Obelisk)에 보여진 히브리인들은 고위 신분 표시인 천으로된 캡들을 쓰고 있었으며 다른 몇 몇 인물들은 단순한 머리 띠들을 두르고 있었다.” (Madeleinze S. and J. Lane MIller, Haper’s Encyclopedia of Bible LIfe, Castle Book, New Jersey, U.S.A., 1996년, p.51~52). 

그러나 성경(신약)은, 이미 앞에서 인용된 귀절(고전11:5~7)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특별한 경우에」 예를들어 기도할 때, 머리에 스컬 캡 쓰는 고대 근동의 이교도 관습과 전통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신성모독 즉 여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그것을 구분해서 말하고 있지만, 이슬람의 경우 구분하지 않고 남자가 쓰는 모자(따끼야)와 여자의 히잡이 동일한 맥락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래의 영상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 머리 덮는 것(히잡)의 역사와 풍습은 나중에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남자 머리 덮는 것(따끼야)에만 집중하기로 하자.

 


4)동방 이교도의 관습을 이어가는 이슬람 모자(따끼야)와 그 기능: 부적(?)  
 성경에 금하고 있음에도, 옆 사진(우측 →)에서 또 확인되듯이, 모스크에서 기도하거나 메카순례를 행할 때 많은 무슬림들은 챙없는 모자인 따끼야를 쓴다. 그런데 그 이슬람 모자와 히잡은 가격도 천차 만별이어서 돈없는 무슬림들은 쓰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교도들에게서 유래한 스컬 캡의 기능은 무엇일까? 안토니오 헤르만데스는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그 기능들을 설명한다: 

 ‘스컬 캡은 항상 여러 본질적인 기능들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보호(물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영적인), 상징, 지위, 정체성, 교육/훈련, 그리고 의무(즉 종교적인 또는 사회적인). 스컬 캡은 불순하고 추운 기후 탓에 생겨 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에서와 같이 화씨 100도를 넘나드는 나라들에서도 스컬 캡 토착 전통이 발견된다. 뜨거운 모래 사막에서의 스컬 캡은, 동토의 추운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확실히 이상적인 보호를 제공한다.’(Antonio Hermandez, My Kingdom for a Crown: An Around-the-World History of the Skullcap and its Modern Socio-Political Significance, p.1)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저 하는 바는 그 이슬람 모자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것이 아닌, 종교적인 또는 영적인 보호 기능이다. 왜냐하면 정치•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거나 물리적으로 머리를 보호 해 주는 것 만큼이나 스컬 캡의 종교적인 또는 영적인 기능은 시원적일 뿐만 아니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기도 할 때 타끼야로 머리를 가리므로서 악한 진(Jinn, 악마)들로부터 자신들이 보호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도하고 있는 당사자가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관습 또는 순나이기에 따끼야로 머리를 덮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알고 하나 모르고 하나,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 있다면 더 계산적일 수는 있으리라.
    KITAB AL-SALAT(THE BOOK OF PRAYERS) 52장에 따르면, 기도 중에 사탄과 악한 진 곧 악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를 무슬림들은 할 수 있다: 

„ 아부 후라이라(Abu Huraira)는 알라의 그 예언자가 다음과 같이 평화롭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 진들 중에 아주 사악한 것이 어제 밤 도망쳐 와서 내 기도를 방해했다. 그러나 알라는 내게 그를 제압할 힘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당신 또는 모두가 그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스크의 기둥들 중의 하나에 그를 메어 놓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형제 술라이만(Sulaiman)의 간청을 기억했다: ‘나의 주여, 나를 용서해주십시요. 나에게 내 이후 그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을 그러한 왕국을 나에게 주십시요’ „(코란, 수라 37:35)(출처 클릭!)
 
영어로 ‘Prayer Cap’(기도용 모자)라고 불리우는 따끼야를 일부 모슬렘들은 모스크 금요일 기도(줌마) 동안에 그리고 매일 집에서의 기도(쌀랏) 할 때 머리에 쓴다. „남자들이 기도하면서 머리에 따끼야를 쓰는 것은 ‘알라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또는 ‘알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을 뜻하는 무스타합(Mustahabb)이다.”(영어 위키페디아 Taqiyah(cap) 항목 참조). 그런데 기도하고 있는 데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악마가 모스크 기둥 등에 메달리거나 아니면 다른 데서 기도를 방해하려 하고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해꽂이하거나 시험에 들게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자신을 보호 해 줄 그 어떤 무엇이, 스컬 켑(따끼야, 모자) 등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약 신체중의 아주 귀하고 명예스러운 부분인 머리를 악마로부터 따끼야가 보호 해 주면서 기도를 도와 주는, 개인마다 다른 천사를 개별적으로 끌어 들인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타끼야 머리에 쓰는 것이 알라의 사랑을 받는 특이한 방식이라면, 그러한 따끼야야 말로 일 종의 주술이요 부적이 아닌가? 아니, 부적의 일 종이 아니라, 모든 부적의 근원을 이루는 부적 중의 부적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이슬람 안에 그 핵으로 살아 숨쉬고 있는 애니미즘(정령신앙)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처럼 이슬람의 악마(악한 진들)과 사탄과 천사론에는 모하멧 이전의 애니미즘적 요소가 녹아 흘러들어 있다. 타끼야 안에 고대 동방 이교도의 스컬 캡(모자)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6)흰 색에서 피 빛 색깔의 붉은 색 모자, 페즈(Fez)로(?) 
 그런데 이슬람 스컬 캡은 색과 모양과 크기에 있어 아주 다양하다. 타끼야(사우디아라비아)는 토피(Topi, 특히 파키스탄) 라고도 불리우는데, 펀잡(Punjab) 토피는 종교적 의미없이 보통 파그리(Pagri)와 함께 착용된다. 따끼야 만 머리에 쓸 때는 어떤 색깔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케피야(Keffiyah) 스카프 아래에 착용되는 따끼야는 항상 흰색이다. 어떤 무슬림들은 캡 주위를 아랍어로 이마마(imama)로 불리우는 터번으로 감싸기도 한다. 영국과 미국의 많은 무슬림 상인들은 그 기도 캡을 쿠피(Kufi)라는 이름으로 팔러다닌다.(위키페디아 영어 Taqiyah(cap) 항목 참조) 
    따끼야와 관련하여 빼 놓을 수 없는 것들 중의하나가 터키의 페즈(Fez)이다. 1925년 이전에 남자들은 칼펙(Calpack) 혹은 타즈(Taj)와 함께 페즈 모자를 머리에 쓰 곤 했다. 그러나 1925년의 모자 관련 법은 이런 형식의 모자들을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또 페즈와 비슷한 타르부쉬(tarboosh)도 있는데, 이것은 오토만 슐탄 마흐무스 칸 2세(1808~39)가 케케야(Checheya)를 만들어 그 제국의 백성과 군인들에게 쓰도록 하므로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에서는 그것이 페즈(fez) 또는 페시(Phecy)라고 불리운 반면 이집트에서는 타르부쉬로 불렸다. 아마 그것은 ‘검은 색이었거나 붉은 색이었거나 또는 흰색이었을 것이다’(Samir Raafat, The Tarboosh: and The Turco-Egyptian Hat Incident, 1932년).
 
오늘 날의 페즈가 지니는 붉은 색는 알라의 이름을 내 세우며 아랍 제국이 팽창하던 시기인 8세기 초 모로코의 도시 그 페즈에서의 기독교인 학살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하는, 프리메이슨 슈리너(Shriner-사원참배객이라고 번역했다-일제 신사참배의 그것을 연상시키기 위해서)와 관련된 아래와 같은 글들이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은 비역사적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긴하다. 그러나 주후 2세기 말까지 현재 모로코(당시에는 모레타니아 Mauretaina라 불리움)의 탕기에르-라밧-페즈(Tangier-Rabat-Fez)로 이어지는 삼각지대 안에는 주교직할구(Bishoprics)가 네 곳 있었으며(World Christian Encyclopedia, ed. D.B.Barrett, 1982년, Newyork, 498a)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유스티아누스 황제를 거치면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성장했기 때문에 페즈를 축으로 돌아가는 그 삼각지역 안의 기독교 도시들은 많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이든 왜곡되지 않는 현존 사료 또는 고고학적인 증거에 근거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터키 페즈가 지니는 붉은 색깔은 순교당한 5 만여 명의 기독교인들의 피를 상징한다는 주장에는, 만약 모로코의 페즈 라는 도시의 건설 전에 문제의 그 학살에 대한 사료적인 그리고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다면, 성급함이 없지 않아 보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슬람 정복사에 조금 이라도 관심을 기울여서솔직하고 담대하게 연구하기 시작한다면, 페즈 기독교인 ‘살육’은 알라의 이름으로 칼과 총으로 행한 엄청난 기독인종 살육들에 비해 조족지혈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으리라.또 현대의 이러한 기독인종살육이 이슬람 포교활동의 수단으로서의 이슬람공포증을 심리적으로 확대 유발시킬 목적으로 좌파신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심지어 연합신문이나 조선일보 등을 통해 무차별적인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 초두에 소개된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한 1998년 아프리카 소재 미국대사관 차량자살 폭발테러에서는 확인된 것은 죽은 자만 224명이었으며 부상당한 민간인은 오천 명에 달했다. 더구나 최근에 일어난 기독인종 박멸 차원에서의 살육도 나이지리아 케냐 수단(우측사진→) 태국 필리핀 등 등에서 시의적절하게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러한 인종살육을 전하는 블러그나 카페나 사이트들에는 종교폄훼(이슬람을 등에 업은 불교계에서 잘쓰는 표현이다) 라는 딱지를 뒤집어 씌어 종교차별금지라는 명목으로 족쇄를 채우려한다. 그러나 이와는 역설적이게도 인터넷 온라인상의 게시글과 댓글을 통해, ‘기독박멸’ 이라는 섬뜩한 구호들이 횡횡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테러 세력의 언론지하드로 인한 것이리라. 
    아무튼 역사 서술에 있어서의 가정은 금물이다. 그러나 정복지역에서의 이전 문화 역사 문헌을 의도적으로 파괴 말살하면서 살육 현장을 은폐하고 그리고 관련 자료를 없에 역사를 왜곡하는, 이슬람의 따끼야 교리에 따라 움직이는 이희수 교수등 어용학자들이 설치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인 근거가 아직까지는 미비하더래도, 아래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읽어보라. 오사마 빈 라덴의 살육의 피, 악마의 현장이 그대로 다시 살아 날 것이다: 

„ 페즈의 역사는 야만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이다. 8세기 초엽에 무슬림 무리들은 ‘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모하멧은 그의 사도이다’ 라고 외치면서 모로코 도시 페즈를 약탈 파괴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5만 여명의 기독교인들을 살육했다. 이들 남자들과 여자들과 그리고 어린이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 때문에, 사원 참배객들(Shriners) 각 각 모두가 알라를 그 사원 창건했던 자신들의 아버지들의 그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복종의 제단에서 각자의 등 뒤로 자신들의 손을 묶인 채 거기에 절을 반드시 해야 만 했던 그 악마의 신, 알라의 이름으로 모두 학살됐다. 거리들은 문자 그대로 순교당한 기독교인들의 피로 흘러 넘쳤다. 사원 참배객들은 자신들의 흰 페즈들을 그 피에 담가 적셨다. 그리고 오늘 날과 동일한 붉은 페즈를 머리에 썼다. 가장 큰 비극은 그 페즈가 스스로들을 기독교인들이라고 고백하는 남자들에 의해서 착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눈물을 뿌리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흥미로운 프리메이슨적인 퍼즐은 우리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의 실제 도로 구획이다. 당신은 그 도시가 프리메이슨의 주요 상징인 정사각형의 광장, 그것을 굴러쌓고 있는 블럭들, 획일화된 도로, 그리고 별 모양으로 짜여진것을 본다. „ (출처 사이트, 하나님 닯은 피조물) 본래는 흰 색이었던 페즈가 5 만 여 명의 기독교인들의 순교의 피가 적셔진 그 후에, 붉은 색 페즈로 변했다는 것이다. 흰 색의 페즈가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흰 페즈'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다음 사이트의 글을 읽어 보라: (Samir Raafat, The Tarboosh: and The Turco-Egyptian Hat Incident, 1932년). 

아마 페즈 역시 원래는 흰색이었을 것이다. 모하멧이 썼던 그 터번이 흰색이었다고 무슬림들이 믿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랬던 것이 역사의 어느 한 변곡지점을 통과하면서 페즈의 흰색이 붉은 색으로 변했을 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살육이 있었을 수도 있다. 터키의 스컬 캡이 그것의 이름을 따랐던 모로코의 도시 페즈의 특산물인 삼홍색의 베리들(crimson berries)로부터 추출된 염료로 붉게 물들어진 터키 페즈, ..., 그래서 더 장엄한지도 모른다. 


7)타끼와(taqiyya, تقيهَ, 기만술)와 따끼야(Ṭāqiyya, طاقية, 스컬 캡, 이슬람 모자)의 어원은 같다? 
타끼야와 따끼야는 그 발음이 아주 비슷하나 미묘하게 구분된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그래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언어학적인 분석을 이 두 낱말에 관해 해 보려한다. 

먼저, 의미론적-어원론적인 분석을 해 보자. 
‘아랍어’의 ‘아랍’( عرب)은 서쪽을 우선적으로 뜻 했다. 따라서 아랍어의 일차적인 의미는 서쪽 사람들의 말이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을 기준으로 하여 본 서쪽인가? 고대 셈족 앗카드인들이 살았던 곳, 곧 고대 앗수르(앗시리아)와 바빌론을 기준으로 하여 봤을 때 ‘서쪽 해지는’(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stament XI, trans. D.E.Green, 2001, p.335) 곳이다. 따라서 의미론은 ‘아랍’ 이라는 말 그 자체가 앗카드어, 어근 ‘ ʻrb ’ > ʻereb ’ 에서 유래한 외래어임을 암시한다. 지금의 우리 말 ‘서쪽’의 ‘서’(西)가 중국어 ‘西’ 발음을 받아들인 외래어이듯이 말이다. 후의 이러한 외래어들은 토착화되면서 여러 파생 의미들을 지니게 된다. 앗카드 문헌보다 2 천 년 이후의 기록인 코란에서는 ‘아랍’ 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대신 형용사 접미어 ‘-iyy(ah)’(우측 사진 아랍어, 알(ال) 아라(عر) 비야(بيه))가 붙은 ‘ʻarabiyy-un’(ayat 43.2-3, 아랍어의)이 다른 말과 함께 ‘아랍인들의 언어’를 지시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아랍’(ʻarāb)의 복수형인 ‘ʼaʻrāb ’(ayat 9.97)은 무함마드에 저항했던 사막의 베두윈 족속을 가리킨다(영어위키페디아 항목: Arab(etymology) 참조). 
    마찬가지로 따끼야(스컬 캡) 역시 외래어이다. 페르시아 터번을 가리키는 페르시아어 따끼야를 아랍인들이 받아들여 자신들의 말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랍 이라는 말과 그리고 따끼야라는 말은, 그 시작에 있어, 베드윈 아랍 족속에게는 외래어였다. 
    그러나 타끼야(기만)는 외래어가 아니다. ‘두려움, 신중함’을 뜻하는 아랍어 어근 ‘w-k-y’에서 파생된(Lisān al-arab, Beirut, 1956년, XV pp.401-4) 아랍 토착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타끼야는 키트만(kitman, 위장)의 어근 ‘k-t-m’과도 관련되어 ‘상해의 가능성이 있을 때 강제로 종교의 예법을 준수하지 않음’ (이슬람백과사전 제10권 134쪽b)을 뜻한다. 따라서 키트만(위장술)과 타끼야(기만)은 서로의 어근에 관련된, 안에서 자생한 아랍 토착어이며, 그래서 아랍인들 나아가서 무슬림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낱말이다. 이것들은 종교로서의 이슬람이 지니는  본래적인 행위 또는 포교 전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그렇다. 위장하고 거짓 말 할 때(상황)가 있는 것이지 항상 그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종교에서, 비록 일시적이고 상황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래도, 거짓과 위장술을 가르칠까?--신천지교도들처럼. 이것을 이해하려면 무엇 보다 나스크흐(Naskh  نسخ) 라는 코란 또는 하디쓰에 있어서의 해석 방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스크흐에 관해서는 차후에 깊게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타끼야와 따끼야 라는 낱말이 지니는 어원론적인 함축을 끄집어내는 것에, 즉 기만(타끼야)과 위장술(키트만)은 아랍어에 그래서 아랍인들에게 나아가서 이슬람에 태생적으로 내재해 있는 속성이라는 것을 끄집어 내는 것에 그치기로 하자-그것이 상황에 근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음으로, 우리 맞춤법에 따라 음역된 그 두 낱말을 음성학적으로 분석해 보자. 
그 둘은 어두 자음, 평음(‘ㄷ’, 디긋)이 격음(‘ㅌ’, 티긋)화 되거나 경음(된소리, ‘ㄸ’, 쌍디긋)화 되는 것에 의해, 그리고 첫음절의 길이에 의해서 차이난다. ‘끼야’(قیة)는 같은 반면, 첫 음절의 초성 ‘ㅌ’(ت) 또는 ‘ㄸ’(ط)이 다르며, 첫음절의 중성모음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이다.--아랍어 여성명사형 어미인 흐( ة = ‘ㅎ(ه)+마르부타(¨)’는 발음되지 않는다. 한글(훈민정음) 창제 원리에 따르면, ‘ㅌ’(격음)과 ‘ㄸ’(경음)은 ‘ㄷ’(평음)에 획들이 추가됨으로서 순차적으로 파생된다. 물론 ‘ㄷ’(평음)은 ‘ㄴ’(비음)에 획 하나 더 붙어 생겨나지만 말이다. 이것은 ‘ㅌ’과 ‘ㄸ’를 주의깊게 구분하여 발음하지 않으면 문제의 그 두 단어를 혼동하여 분간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속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아랍어 일반에 대해 알아보자. 
아랍어는 그 자체 하늘에서 똑 떨어져 계시된 것이 아니라, ‘바벨탑언어’ → ‘원시셈어’ → ‘서부셈어’ → ‘중앙셈어’ → ‘서부셈어’ 순서의 역사적 전개와 발전과정을 통해 생겨난 언어이다. 여기서 ‘어’(語)는 ‘글’ 보다는 ‘말’을 우선적으로 뜻한다. 그렇다면 아랍문자(Arabic Script)는 어떠할까? 아랍 문자는, 많은 무슬림들이 믿고 있듯이, 코란 이전에는 없었다가 코란(꾸란)을 통해서 비로서 계시되어 존재하게 된 것인가? 아니다. 아랍인(베두인)은 본디 유목민으로서, 이집트인들의 상형문자와 수메르•앗카드인들의 설형문자와 같은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았다-그래서 이슬람에서는 구어(口語)전통이 아주 중요하다. 이들 후손으로서의 모하멧은 심지어 어떤 문자도 모르는 문맹인이었다. 
    아랍어가 코란의 계시를 통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아랍인들은 지금의 자신들 문자를 갖게 됐을까? 시나이 반도와 요르단 동쪽 네게브 사막의 페르타 등을 그 중심 축으로 하여 살았던 나바티언(Nabataeans)들은 아람어(시리아어)를 빌려와 자신들의 문자 삶을 영위해가고 있었다. 바로 이들과 섞여 살고 있었던 아랍인들을 통해 현대 아랍인들은 코란의 언어, 자칭 「고전 아랍어」를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대표준아랍문자의 기원은 아람어, 그것도 서부 시리아인들의 언어이다. 즉 서부 시리아기독교인들의 문자(Syro-Aramaic Script, serto, Jacobite language)와 모음표기부호를 받아 들여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문자를 갖게 된 것이다( Cf. The Syro-Aramaic Reading of The Koran, Christoph Luvenberg, Verlag Hans Schlier, Berlin, 2007, pp.30~33: 3.The Arabic Script.). 문자 위 아래 붙은 점들을 구분 못하면 아랍어가 불 가능한데, 이러한 점들은 모두 주후 7~8세기 시리아어 모음표기(Jacobite의 serto가 아닌 네스토리안 모음 점들)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히브리어 모음 표기도 마찬가지이다.

‘똬 언어’로서의 아랍어 
이미 언급된 것처럼, 타끼야(تقيهَ)와 따끼야(طقيهَ) 이 두 단어는 음성학적으로 볼 때 단지 어두자음, ت(타)와 ط(똬)만이 다를 뿐 나머지 부분은 모두 같다-여성형 어미까지!. 더구나 유일하게 구분되는, 우리 문법 용어로 말하면, 동일한 전설치조파열음인 그 어두 자음들은 성문에서의 공기압축방출 세기 강약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즉 혀끝(전설)으로 윗니 바로 뒷 부분(치조)을 막았다가 떼어내는 그 순간, 성문에서의 공기압축방출이 없으면 평음(‘ㄷ’), 약하면 격음(‘ㅌ’), 그리고 강하면 경음(‘ㄸ’)이 되는데, 격음인 타끼야의 ‘ㅌ’와 경음(된소리)인 따끼야의 ‘ㄸ’가 이렇게만 구분되어 소리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아랍 신문이나 방송이나 출판 등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그러나 아랍 각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말해지는 구어(口語, spoken language)들의 발음과는 다소 다른 현대아랍표준발음에 따르면. ‘ت’(tā’, 타ː)는 그 소리 값으로서 ‘ t ’(t as in tap,ㅌ)를 지니는 반면 ‘ط’(ṭā’, 똬ː)는 ‘ ṭ ’(ㄸ)를 지닌다. 그런데 바로 이 소리 값이 문제다. 왜냐하면 셈어 이외의 언어에는 ‘ط’에 해당하는 음소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t’ 아래에 점( . )을 붙힌다. 우리의 외래어 맞춤법에 따르면, 그 음소가 ‘ㄸ’(쌍디귿)으로 표기된다. 그러나 인후(咽喉, 목젖아래부분)와 성문(聲文) 사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기압축방출이 예전 훈민정음 때와는 달리 약해진 현재의 ‘ㄸ’ 보다 ‘ط’는 좀 더 세게 소리난다. 아무튼 철자 ‘ㄸ’에 ‘ㅌ’이 상응하듯이 그렇게 ‘ط’(똬)에 ‘ت’(타)가 상응하므로, 우리는 영어 화자들과는 달리 더 쉽게 ‘ط’를 발음할 수 있다. 외국인 특히 서구인들이 한글을 배울 때에 ‘ㄷ’과 ‘ㅌ’과 ‘ㄸ’ 구분에 애 먹는 것도 이들에게는 음소, ‘ㄸ’에 해당되는 문자(알파벳)이 없기 때문이다-영어에는 이러한 상응이 없다. 우리 한글의 조어능력의 탁월함이 확인되는 순간이다--'웨'와 '위'와 '워'와 '애'와 '에' 등 등의 모음과 어울리는 'ㅋ'과 'ㅍ'과 'ㅊ' 등의 자음들을 아랍사람들더러 해 보라고 하라. 같은 소리만 낼 것이다--. 그리고 범어나 힌디나 빨리어의 경우에도 이러한 상응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상응 때문에 ‘ط’(똬)와 그리고 ‘ㄸ’(쌍디귿), ‘ट्’(따, ṭa) 또는 ‘ठ्’(ṭha, 타)가 정확히 동일한 음가를 지니는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중세 때 아랍인들은 이 소리계열이(ص ض ط ظ) 자신들의 언어에 독특한 것인 줄로 생각하고, 자기들의 언어를 ‘똬 언어’(lughat al-ḍād, 'the language of the Ḍād') 라고 불렀다(영어위키 아랍어 항목참조). 그러나 한글과 범어와 힌디어 등에도 그와 비슷한 ‘상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히 대응하는 음소들이 있었다. 예를들어 아랍 글자 ط의 음소를 지닌 것들이 아랍 문자의  어미문자(母文)인 시리아아람어(ܛ Ṭeth, 떼트)와 그리고 성경히브리어(ט, Ṭeth)에도 있었고--그러나 현대히브리어에서는 아랍어 ط에 상응하는 음소가 없다. 'ט'(Thet)는 'ㅌ'(t)로 소리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어와 힌디어( ‘ट्’, ṭa 따또는 ‘ठ्’ṭha, 타)에도 있었으며, 지금 있다. 이걸 모르면 마치 그것이 아랍에 고유한 것인 양 선전하는 타끼야에 속는다. 
    그러면, 한글, 그래서 몽고어(옛 몽고문자도 시리아어에서 파생됐다), 힌디어, 시리아어, 히브리어, 그리고 아랍어 등의 언어가 지니는 문제의 그 상응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서구학자들은 그것을 ‘emphatic’ 또는 ‘velarization’(강음화 또는 연구개음화軟口蓋音化) 라고 부른다. 성문에서의 공기의 압박방출이 자신의 짝인 ‘ت’(타-, tā’)에서는 아주 약한 그래서 거의 없는 것과는 달리 ‘ط’(똬-, ṭā’)에서는 강하다는 것이며--그래서 혀 끝 윗부분이 윗 앞니 잇몸에 접촉했다 떨어지는 (파열하는 순간) 혀 뒤 쪽이 인후(목구멍) 쪽 공간을 최대한 좁힌다--, 그리고 파열되는 부분 즉 닿는 조음기관이 혀끝와 윗니 잇몸(ㄸ와 비슷하다-연구개앞부분)이라는 것이는 그 상응의 내용이다. 


8)결어. 
타끼야와 따끼야에 대해 말하면서 왜 나는 이처럼 관련 언어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어떻게 보면 실로 의미 없는 기술을 하고 있는가? 이슬람의 타끼야(기만술)에 속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계속될 내 글들이 언어학적이면서 문헌학적 성격도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슬람은 아랍어가 마치 코란에서 계시된 언어인 것처럼, 그래서 마치 예전에 없었던 아랍어(말과 글)와 코란이 하늘에서 똑 떨어져 계시된 것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란의 문자는 시리아-아람어 문자를 빌려 온 것이며, 설령「고전 아랍어」가 있었다손 치더래도 그것 역시 시리아-아람어(Serto)에서 발전된 것일 뿐이고, 그리고 코란 내용의 약 70% 역시 기독교인의 성경 곧 신약과 구약(유대교의 타나크)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일부 변조시켜 가져 온 것이므로 그렇다. 이슬람 학자들의 단골 메뉴가 성경변질론인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나는 후에 시리안 스크립트들(estrangela와 Serto와 Nestorian)에서 어떻게 아랍어가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관련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기술 할 것이다. 

따끼야, 곧 무슬림 남자들이 순례 할 때나 기도 할 때 쓰는 모자(skull cap) 역시 이슬람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유대교인의 깊파(kippah)와 천주교인의 츠케토(Zucchetto, 머리 위에 얹는 챙없는 모자, 신부-검정색, 주교-보라색, 추기경-빨강색, 교황-흰색)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교도 고대 동방의 스컬 캡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시리아어(setrangela)와, 그리고 이 고전 시리아어에서 파생된 서부 시리아어(serto)와 동부 시리아어(nestorian)를 변형시켜 「고전아랍어」를 ..., 그리고 신구약을 변질시키면서 첨삭 가공하여 「코란」을, 또 유대교의 랍비와 그리고 기독교의 감독과 주교 사이의 관계를 본떠서 이맘(이슬람 성직자)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어용학자들과 편향적인 학자들과 그리고 이런 정교한 否(부)정적 함축을 모르는 학자들은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아브라함 종교라고 하면서 한 범주로 묶어낸다. 그러나 기독교와 유대교가 동일한 범주에 속할 수 없듯이 이슬람교 역시 기독교와 한 범주에 묶일 수 없다. 이 셋은 전혀 다른 종교다. 기독교로 위장하고 있지만 신천지교는 전혀 기독교가 아니듯이 그렇게 이슬람은,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전혀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한 선전은 기독교인을 유혹하기 위한 속임수요 기만(타끼야)일 뿐이다. 오히려 신천지는 교리적으로나 그 행태로나 이슬람에 가깝다-아니 그 위성 종교인 것처럼 보인다. 차후 신천지와 이슬람을 비교 할 기회가 생기면 적나라하게 이 둘의 관계를 학술적으로 까 발릴 것이다. 이 둘은 기막히게 통한다. 그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신천지교 창시자 이만희에게 공개적으로 후원 자금을 제공하지 않았겠는가?

이슬람의 기원을 합리적으로 탐구하지 말 것이며, 이슬람 신앙의 이성적인 근거를 묻지말라고 협박하는 것은 이슬람 본연의 모습이 신실한 무슬림들에게 폭로될 것을 그 악령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함에도, 이슬람 포교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슬람은 합리적이고 이성에 딱 들어맞는 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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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의 숨겨진 역사(동영상)

    이슬람의 숨겨진 역사는 기독교나 불교나 힌두교 역사의 숨겨진 그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폭로하는 사이트가 있어 유투브 동영상이 있어 그 주소를 소개한다: http://www.youtube.com/playlist?list=PLE62EB7F922BF8FC9
    Date2012.06.14 Category초기정복사의허구→이슬람기원 Views6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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