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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국가(예를들어 지금의 터키에 속한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평화적이고 자발적으로 이슬람에로 개종 했다고 이슬람 어용 학자들이나 좌파적 또는 무신론 종교편향학자들이 서술하곤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기독교 중세유럽의 이단 박해에 비교하면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만 보여 줄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것은 단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바의 성격이 아니다. 이슬람 종속민들은 무슬림이 아닌 한,  유대인이건 기독교인이건 모두 딤미(노예) 상태로 전락한다-딤디의 근원은 비잔틴 제국의 노예제도에 있다.
    노예니까 자연스레 소유자들의 재산이어서 사고 팔리며 이따끔 죽임도 당한다. 딤미 상태의 노예 이것은 이건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적용되는 특이하고 낯설은, 단지 구시대사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 지구 곳 곳 수 억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살아있는 용어이다. 딤미들은 꼬박 꼬박 세금(인두세-보호세, 지즈야)도 내야 하며, 예배는 거행 할 수 있지만 더 이상의 교회 증개축이나 시설보안 그리고 새로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2~3 세대가 지나면 결국 사라지게돼어 있다. 사회경제정치적인 이런 집단적 불평등과 억압과 차별과 박해 속에서 견디다 못 한 기독교인들이 하나 둘 그리고 집단적으로, 때론 이해타산에 따라 개종한다.

그러나 개종하지 않는 자들은 숫자에 상관없이 적절한 때에 개 돼지 처럼 살육되며-공산치하의 악질반동분자나 다름없다- 살던 고향에서 알 몸으로 쫓겨난다. 바로 이것을 지금의 터키 지역 그리고 현대 이집트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역사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관련된 글(조갑제 닷컴 게시글에 달린 댓글)이 있어 그대로 옮겨 본다. 주후 301년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국가(주후 451년부터는 이단-단성론- 으로 간주 됨, 로마는 최초의 기독교국이 아니다)가 됐던 아르메니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 시리아 동방정교회 미하일 대주교(1166~1199)는 자신의 연대기에서 4만 7천명이나 되는 에뎃사 전체 인구가 셀주크터키 모슬렘들에게 박멸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에뎃사는 폐허가 됐다: 눈을 옮길 때 마다 시야는 검은 망또에 가려졌으며 피에 취했고 에셋사의 아들과 딸들의 바로 그 주검들로 가득채워졌다! 흡혈귀들과 다른 야만짐승들이 살육된 자들의 살로 잔치를 벌릴려고 밤에 그 도시로 뛰어 들어 온 통에 거기는 재칼들의 거주지가 됐다. 보물을 캐내려는 자들 이외의 그 누구도 거기에 들어오지 아니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1천 2백만명이나 됐던 소아시아의 전체 인구(대부분 기독교-동방정교회)가 13세기에는 반으로 줄어 들었습니다. 안디옥도, 그리고 사도 바울 당시 25 만 명이 살았던 에베소도 1200 여 년 후의 이런 무슬림들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학살-박멸-의 예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현재 한국 내 안티기독교자들이 외치는 박멸이 에뎃사와 에베소에서 800 여 년 전에 행해진 바로 이런 박멸과 똑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이런 박멸은 현재 이슬람에 의해 나이지리아와 수단 등 세계 곳 곳에서 지금도 반복되고 있지요. Sasa bey가 이끄는 셀주크터키 군대는 1304년 에베소를 점령, 에베소에 사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박멸하여 죽이거나 또는 노예로 삼아 강제 이주시킵니다.

1304년 이후, 처음으로 에베소에 1340 년에 들어 온 한 대주교는 늙은 터키 할머니 집의 냄새나는 방에서 예전엔 기독교 사제들이었고 수도사들이었던 죄수들과 노예들 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330년 경, 에베소를 방문했던 이븐 바뚜타는 자신의 여행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리이스인들이 경탄했던 예전의 교회가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Isa Bey] 모스크 성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의 하나이다. 나는 여기에서 40 디나(dinars)를 주고 그리이스 노예 소녀 한 명을 샀다'-노예(딤미)거래는 지금도 무어 족 일부 무슬림들에 의해서 행해지지요. 바로 이것이 김근성씨가 쓴 위 본 게시글에 나오는, 현재 한국에서 의도적으로 젊은이들을 쇠뇌시키면서 반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기독교 ‘박멸’의 역사적 한 사례요 그리고 그 결과입니다. 기독교인의 그 에베소는 이런 과정을 통해 모슬렘의 Ayasulug으로 그 이름이 기독교인들이 박멸된 1304년 직후에 바뀝니다[참조: 기독교의 잃어버린 역사, 필립 젠킨즈, 2008년 pp.114~132].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 터키가 탄생합니다. 물론 탄생 직전에 수 백 만의 아르메니안 기독교인들을 박멸하지요 ... 영월남자님 반갑습니다. ... 박주영에 대한 일부 언론의 공격 역시 나는 동일한 맥락의 연장 선 상에 있다고 봅니다.


1/3) 케말 파샤는 수백만의 기독인들을 3년 동안 살륙한 인종학살자 중의 한 명일 뿐이며(비록 터키에게는 국부이지만), 그가 구성원이 된 적이 있었던 '연합진보위원회'는 일부 독일인들에게 나찌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회 연설(2008년11월13일)에서 브레맨 대학의 로날드 뮌츠 박사는 만약 무스타파 케말 파샤(아타튀륵, 터어키 국부)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그는 전범재판에 회부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1915년부터 1917사이에 행해진 수백만의 기독교인(아르메이안)의 살육 주체가 될 청년터키당의 7월 혁명(1908년)에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그리고 혁명 한 해 전인 1907년에 차후 아르메니안 인종살육 집행부가 될 ‘연합진보위원회’(CPU)의 구성원이 된다. 물론 그 후 신권정치의 오스만투르크에서 헌법상의 정교분리 국가 터키로 국체가 변형되던 시기인 1929년에 케말 파샤는 자신이 몸 담은 적이 있었던 그 CPU의 Ittihadists(기독인종박멸과 안티세미티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던 자들로서 정치국면이 전환되자 나찌즘 형성기의 독일로 터키에서 도망간다. 바로 여기에서 나찌의 유대인 살육 이데올로기 싹이 발견된다) 중 닥터 Nazim를 포함한 몇 몇을 교수형에 처하기는 해도 말이다. 나이브하게 하게 말하자면 케말 파샤가 이들을 용도폐기한 것이다. 1926년 8월 1일 일요일 자 저널 ‘Los Angeles Examiner’에 실린, 스위스 저널리스트 에밀 힐더브란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케말 파샤의 다음의 주장을 들어 보라: ‘잔인하게 집에서 집단적으로 내 몰려 살육 당했던 우리의 수백만 기독교 종속민들의 생명들에 대해 책임이 있는 예전의 청년터키당의 이런 잔재들은 공화국 지배 하에서 골치거리이다’(출처1: http://www.greek-genocide.org/perpetrators.html#kemal )(출처2: http://en.wikiquote.org/wiki/Armenian_Genocide )-노련한 정치가의 언변술이다.

2/3) 1915~17 년의 수백만 아르메니안 기독인 살육은 규모에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다: 1915~1917 터키의 수백만 아르메니안 기독교인 살육은 상호 교전 중에 우발적으로 또는 아르메니안들이 폭 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터어키 내 전국적으로 산재 해 있는 마이너리티 기독교인들을 박멸하려는 의도적인 계획 하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유일하게 이 인종학살을 몸소 겪고 나서 그 참상을 기록한, 중립국 스위스 의사 야곱 퀸즐러의 책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에서’(영어번역서 제목) 다음과 같이 확인된다. 다음은 1915년 8월에 퀸즐러가 목격한 사실이다: “… Urfa(에뎃사의 터키 지명)에 두 명의 터키 관리가 나타났다. 자신들은 아르메니안 박멸을 위한 모든 권한을 가진 자로서 아르메니안 박멸을 다급히 독려하기 위해 서둘러 왔으며 그리고 그렇게 하라는 최고 당국자의 재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은 루머였다. 이것을 근거로 이들은 자신들이 우르파(에뎃사)에 도착한 순간에 지체없이 모여있는 모든 죄수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왜 우리가 이들을 먹여야 하지?’ 라고 그들은 말했다”(독일어 원문, p.53). 1915~16년에만 터키 전역에서 적어도 일백만 명 이상의 기독교 아르메니안들이 살육 당한다. 이 때 터키는 국수주의자들인 청년터키당원들의 수중에 있었으며 그리고 이들이 살육을 계획하고 이끌었으나, 실제 살육은 이십여년 전인 1894~96년에 우르파(에뎃사)일어난, 산 채로 매장된 삼천 명을 포함하여 8천명의 아르메니안 기독교인들이 죽음을 당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슐탄 압둘 하미드의 관리들은 모스크에 무슬림들을 모아 놓고 이들 무슬림들에게 아르메니안들은 이슬람에 반항하여 폭동을 일으킬 준비가 돼어 있다 라고 알리고 나서 쿠르드 비정규군의 협력하에 오스만 투르크 군대로 하여금 그 살육을 진행시켰다.

3/3) 아르메니아는 한국과 비슷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이러한 식의 기독교 박멸은 오스만 투르크가 해체되는 1차세계대전의 와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개체로서의 아르메니안 국가가 1375년 슐탄 Mamluks에 의해서 도륙 당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때부터 기독교 아르메니안들이 이슬람 역사의 굴곡 순간 순간에서 당했던 살육과 동일한 맥락에 있다. 1375년 망한 이후로, 국가로서의 아르메니아는 지구에서 사라졌고 아르메니안은 기독교인(민족)이라는 그 이유로 이슬람 국가 터키(투르크들) 안에서 노예(딤미)로 명맥을 겨우 유지하면서 역사의 질곡 질곡에서 집단 박멸 당하거나 살던 곳의 땅을 빼앗기고 다른 곳으로 유배(디아스포라) 당한다. 아직까지도 아르메니안은 현재 터키 지경에서 자기 선조들이 일구었던, 그러나 투르크 족들에게 빼았겼던 그 왕국 아르메니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소련 해체 1년 전 독립을 선언하고 소련이 해체된 후 1 년 만인 1991년에 소련 땅에서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한다. 주후 301년 국가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국이 된 아르메니아는 주후 451년 이후에는 이단(단성론)으로 몰려 때론 핍박당하가, 1375년부터는 이슬람 국가에 나라를 잃고 식민의 생활을 하면서 박멸되곤 하다가, 1910년 대에는 수 백만 명이 이 삼년 안에 박멸 당하는 피의 순교의 수난을 겪는다. 바로 이것을 작금 우리나라 인터넷 언론 댓글에서 현란하게 의도적으로 재생산되는 ‘박멸’이라는 단어가 의미한다.
    로마와 페르시아와 러시아 등의 강국에 둘러쌓여 과거 찬란했던 왕국을 잃어버린 채 겨우 명맥 만을 유지하고 있는 아주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처럼, 한국 역시 강대국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에 둘러쌓여 아직도 참된 의미의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제국주의 출현을 함축하는 ‘박멸’ 이라는 말이 국민 뇌리 깊숙히 언론 지하드를 통해 박히고 있다. 이것은 한민족이 지금까지 겪어 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역사가 경우에 따라서는 전개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모 슬렘(특히 시아파)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이 무슬림임을 속이고 마치 타 종교인인 것처럼 위장(거짓 개종도 이에 속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아랍어로 키뜨만 이라고 합니다. 기독을 ‘개독’이라 하면서 박멸하려 하는 자들이 위장하여 적의적인 인터넷 댓글을 달 때 ‘기독교인인 나도 …’ 라고 하면서 마치 기독교인인 것처럼 기만하면서 설득력을 높이려 하는 것도 키트만의 일종입니다.
    신천지 행태도 여지없이 모슬렘의 이런 키뜨만과 같습니다. 마치 기독교인인 것처럼 교회에 침투하여 3개월 내지 1년 때로는 3년까지 머물면서 속이고 기만하여 결국은 교회를 박멸하려 드니까요. 기독교 파괴와 박멸이 이슬람 지하드의 그것처럼 신천지의 목표임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또한 ‘신정정치’를 모토로 내건 ‘한국기독당’(기호18번) 역시 이슬람과 손에 손잡고 있는 셈입니다-창당식에 승려들까지 있더라구요. 이슬람의 이데올로기인 신정정치를 똑같이 모토로 내 걸고 있으니까요. 신정정치는 중세의 유산인데, 아직도 중세를 살고 있는 이슬람 정치를 지향하다니,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모든 기독교는 신정정치가 아니라 민주정치를 통해 기독교인의 정치의사를 대변합니다. 19대 총선에서 역시나 통합의 대의를 거부하면서 손에 손잡고 기독교분열을 획책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이들의 정체는 곧 밝혀질 겁니다. 이번 총선에서 한국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호 10번 기독자유민주당 등, 모든 당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시어 쁘락치들의 기독교 분열 책동을 막아주시고, 그리고 수쿠크법과 여권법 재 개정시도, 과세를 빙자한 종교 파괴 선동을 막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이슬람은 세금에 아주 민감해요. 그리고 세금을 이용합니다. 유류세 등 슬 슬 세금에 태클을 걸면서 민중을 선동하는 세력들이 준동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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