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부산총회 폐막식 |
WCC 평화통일성명서는 소위 ▲남북한 교회의 협력과 연대를 골자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북한정권에 대한 경제제재·금융제재 해제 ▲외세(外勢)의 한반도에서의 모든 군사훈련 중단, 즉 한미(韓美)연합군사훈련 중단과 韓美군사동맹 무력화 등 북한정권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놓았다.
이 성명서는 이산가족 방문 등 인도주의적 이슈 해결도 언급했지만, 정작 공개처형, 탈북자 강제송환, 20만이 수감돼 있다는 정치범수용소를 비롯해 구류장·집결소·단련대·교화소 등 각종 수용소 시설에서 자행돼 온 고문·감금·학살,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찾을 수 없다.
성명서는 곳곳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한반도 평화를 파괴해 온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은 전무(全無)하다. “주체혁명 위업(偉業) 완성”이라는 북한의 대남적화(赤化)음모를 접으라는 충고도 없다. 천안함·연평도 등 온갖 도발·공갈·협박에 대한 비판도 없다. 핵무기·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중단에 대한 촉구도 없다.
북한의 변화에 대한 요구 없이, 북한의 요구를 받아야 한다는 일방적 주장만 있다.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김정은 정권의 악행(惡行)에 대해 완벽에 가까운 면죄부를 부여해 놓았다. 구체적 내용은 이렇다.
■ 선언문은 우선 동북아시아 지역의 소위 ‘신냉전’을 경고한다. 바로 미국(美國) 때문이며 이로 인해 중국, 일본, 러시아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지도가 힘의 균형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새로운 ‘신냉전’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존재하는 미국(美國)의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힘 때문에 새로운 긴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 국가인 중국, 일본, 러시아도 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선언문이 밝힌 해법은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외세(外勢)들이 한반도에서의 모든 군사훈련 중단, 외국의 개입 중지, 군비축소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창의적인 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군사훈련은 한미(韓美)연합군사훈련 외에는 없다. 결국 WCC 요구는 韓美연합군사훈련 중단과 韓美군사동맹 무력화다. 정확히 북한이 요구해 온 것이다.
■ 선언문은 “현재 상황은 1953년의 정전협정을 대체(代替)하는 평화협정이 긴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1953년의 정전협정을 대체하여 전쟁상태를 종식시킬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폭넓은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는 역사적 선례가 있다. 1973년 1월 자본주의 남(南)월남과 공산주의 북(北)월맹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됐고 두 달 뒤 南월맹에 주둔했던 미군이 빠져 나갔다. 1975년 3월 미군이 철수한 후 2년이 지나자 北월맹이 남침했고 南월맹은 50일 만에 적화됐다.
평화협정은 곧 외국군 철수를 뜻한다. 南월남은 평화협정을 맺었고, 미군이 나갔고, 2년 뒤 망했다. 북한도 “평화협정은···남조선을 강점(强占)하고 있는 미군을 철거(撤去)시키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북한 ‘백과전서’)”고 정의한다.
한반도에서도 평화협정은 곧 미군철수다. 월남패망의 역사적 사례도, 북한의 사전적 정의도 그렇다. 곧 나가느냐 좀 있다 나가느냐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WCC선언문은 평화협정을 맺자고 말한다. 북한의 대남(對南)적화공작 포기, 대량살상무기 포기, 개혁·개방, 인권유린 중단 등 평화의 전제가 될 요구는 하지 않는다. 이런 살벌한 주장을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니 더욱 섬뜩하게 들린다.
■ 선언문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고, 지원을 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대상은 주민이 아닌 주민을 폭압해 온 정권을 뜻한다.
“우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새로운 노력을 시작하고 북한에 대한 기존의 경제제재(經濟制裁)와 금융제재(金融制裁)를 해제하도록 각국 정부와 함께 협력한다(···) 북한의 지속적인 인권위기를 고려할 때 우리는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支援)을 시작하고 북한과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실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성명서는 “경제제재는 일차적으로 한 국가의 국민,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수단이 된다”며 “북한에 대한경제제재의 전략적 효과뿐만 아니라 윤리적 원칙에도 의문을 제기한다”고 했다.
그러나 WCC는 이른바 지원(支援)이 핵무기·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전용돼 온 현실은 말하지 않는다. 이른바 제재(制裁)가 대량살상무기 개발, 그리고 특권층 사치품 수입과 관련된 품목에 제한돼 있다는 사실도 언급치 않는다. 김정은 정권이 지난 해 김일성·김정일 커플 동상 제작 등 태양절 행사에 무려 20억 달러를 탕진한 부도덕성에 대해서도 눈을 감는다. 97년~2007년 사이 69억5천 만 달러, 북한주민 23년 치 식량 살 현금과 현물을 퍼 줬지만 여전히 북한주민 3분의 1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는 진실도 모른 채한다. 2천만 동족을 인질로 잡고 있는 사악한 정권을 돕는 게 윤리적(倫理的)이라며 목청을 높인다.
■ 성명서는 핵무기 문제도 다뤘다. 그러나 정작 “핵전쟁” 공갈을 수도 없이 쏟아내고 있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북핵문제와 원자력발전을 똑같은 악(惡)으로 다루며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제거”라는 놀라운(?) 양비론을 전개한다.
“이 지역의 핵무기와 핵발전소들을 완전하고 입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제거하기 위해 동북아지역에 핵무기 없는 구역을 설치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동시에 세계의 모든 지역에 핵무기에 대한 인도주의적 금지를 위한 새로운 국제협약에 가입함으로서 지구상의 어떤 지역에서도 생명이 더 이상 핵으로부터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한다”
■ 성명서는 일관되게 남북한 교회의 협력·연대를 강조한다. 북한이 세계 최악의 기독교탄압국이며 성경책 한 권이라도 갖고 있다면 처형을 당하거나 끌려가는 사회라는 현실·사실·진실은 WCC 결의에 나오지 않는다. “김일성이 하나님”이라는 북한의 봉수교회·칠골교회, 이른바 김일성교회와 연합할 것을 되풀이해 촉구한다.
“남북한의 교회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공동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합니다”
“남북한의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교회와 에큐메니칼 협력단체들이 남북한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사이의 긴밀한 협력(協力)과 투명한 관계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새롭게 힘을 내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책임감을 느낍니다”
“남북한의 교회를 방문하는 연대(連帶)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화평케 하는 자와 가교를 잇는 자로서 섬기도록 한다”
“남한과 북한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함께 만나서 화해와 평화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공동의 장을 제공함으로서 남북한의 교회들과 지속적으로 동행한다”
■ 성명서는 “우리는 이런 선도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시기가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2015년이라고 본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한국의 상당수 대형교회, 수백 만 기독교인의 방조와 공모 아래 만들어진 이 참담하고 섬뜩한 선언문이 만들어낼 2015년은 심판과 재앙, 사랑하는 조국의 몰락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