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를 위한 변명
사람들은 처참한 상황에 처하면, 특히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그 답을 종교에서 찾게 된다. 유일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신의 뜻으로 돌린다.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초월적인 뜻(의지)이 그런 사건을 만들었다고 돌린다. (엄밀한 시각으로 보면, 특히 무종교인이 눈으로 보면, 사실을 얼버무리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나 인문사회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을 신의 뜻으로 돌리는 법은 없다. 그랬다가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마치 모든 일을 어버이 수령동무의 은혜라고 주장하는 북한처럼. 과학(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그날까지는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신의 섭리로 돌리고 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창극 총리후보가 조선의 식민지화에 대해서 ‘우리민족을 시련을 통해 단련하시려고 한 것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은 사적인 공간에서, 기독교인 입장에서, 신앙간증을 한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그런 발언을 했을 것인가? 역설적으로, 그의 발언은 어떤 면에서는 신에 대한 항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의해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누구나 私的인 영역에서는 신앙생활을 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었으니 면밀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필자는 기독교신자가 아니다.
불교계가 들고 일어났다. 후보사퇴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억울하고 부조리한 일이 발생하면 전생의 업(業 카르마)으로 돌린다. 기독교인들이 신에게 돌리는 일이나 정서적으로는 같은 현상이다. 물론 불교적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론적인 설명이 더 과학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는 하다. 만약 불교인 총리후보가 절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우리 한민족의 과거 업(共業 집단의 업) 때문이라고 강연한다면, 기독교인들이 들고일어나서 총리지명을 철회하라고 해야 할 일인가? 전생이 그리고 윤회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당신의 주장은 그런 비과학적인 종교적인 이론을 근거로 ‘일본의 침략을 우리가 잘못한 업보 때문’이라고 정당화하는 발언이라고 비방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일인가? 불교적인 독법(讀法)일 뿐 아닌가? 정 공격하려면 종교교리를 공격할 일이지 개인의 신앙고백을 공격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널브러져 있다. 유태인들은 나치에 의한 600만 동족의 학살을 납득할 수 없었다. 2,000년간 일편단심으로 민족신 야훼를 섬겼지만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 후 많은 유태인들이 유태교를 버렸다. 상당히 많은 유태인들이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불교로 개종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文昌克 후보는 아직 신앙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리고 舊韓末 기독교의 역사는 유태인들처럼 신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간과 마음과 몸을 바쳤다고는 할 수 없기에, 나온 발언이다. 아직은 100여년 동거한 것에 불과하기에, 우리나라 기독교인들과 신과의 관계는 서로 대화하며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나라의 역사는 2차세계대전 후의 신생독립국들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쟁취한 유일한 국가이기에, 주도적으로 기독교를 통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기독교인들로서는 그리 발언할 만도 하다. 물론 나쁘게 보면 ‘유태인들처럼 아직 매운 맛을 못 보아서’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난징학살 사건과 관동군에 의한 인체실험을 비롯한 숱한 反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일본을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다시는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말로 공격하는 것은 혀만 놀리면 될 일이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희생하는 힘든 희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참으며 희생하듯이, 우리가 우리 후손을 위해서, 즉 후손이 일본에 다시 침략당하거나 경제적·정치적으로 실제적인 노예(정치적·경제적으로 종속된 국가의 국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념이 우리 누이들의 순결을 지켜주지 못한다.
나라임금이 한겨울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이마가 피투성이가 되었다. 국토는 유린당하였으며 끌려간 백성이 수십 만 명이었고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어린 여인들이었다.
\당한 일이야 골수에 사무치는 치욕이지만, 국제관계란 본시 세렝게티 초원처럼 약육강식의 세상이 아닌가? 억울하다고 그리고 사과하라고 외치는 것보다는,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다.
이사 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옆집에 사는 상습전과자나 강도나 살인자를 퇴치하는 길은(5,000만 한민족이 이사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억울하다거나 사과하라고 외쳐서 될 일이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 담을 높이고 첨단 경비시스템을 설치하고 사나운 개를 기르고 집에 무기를 두고 그리고 힘센 사람을 친구로 두는 것이다. 차례차례로 당나라에, 원나라에, 일본에, 청나라에, 그리고 다시 일본에 당한 일을 어찌 앞으로 다시 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북한을 탈출한 북한여인들이 중국인들에게 성적 노리개로 팔려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토가 침략을 당해야만 침략을 당하는 것인가?
그러므로 문창극 후보의 발언을 어리석은 발언으로 만드는 길은 우리가 굴기해서 보란 듯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그리고 강대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외칠 수 있다, 문창극의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당신의 한민족에 대한 평가는 틀렸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런 시련을 주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잘했을 민족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이룩한 이 빛나는 대한민국을! 그러니 일제 식민지가 되게 한 것을 사과하세요.”
이번 사태가 그런 기회로 활용되지 못하고 말싸움에서 정쟁수단으로, 그리고 종교 간의 다툼으로 번지는 것은 무슨 유익함이 있을까? 언론이 장기 특집시리즈를 꾸며 볼 것을 제안한다. 일본과 한국 사이의 냉정한 國力비교(수천 개 각 분야의 세세한 비교)와 그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 각 분야가 해야 할 길을 제시하기를 제안한다. 그래야만 國力부흥의 뜨거운 열기로 종북좌파들도 자연고사할 것이다. 그러면 문창극 후보가 염려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불구대천지원수 일본이 보기에 핵폭탄이라는 흉측한 무기로 위협하는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좌파가 우글거리는 한국은 얼마나 콩가루 집안처럼 보일 것인가? (미국으로부터 핵폭탄을 두 발이나 얻어맞은 일본은 핵폭탄이라면 경기를 일으킨다.
영국, 불란서, 독일은 대문명국 로마제국의 장군 시저가 침공할 당시 미개인의 땅이었다. 만약 이를 부인하면 챔팬지 오랑우탄 고릴라의 정글이 미개지가 아니라 문명동물의 땅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인간이 모두 평등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명(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발달·미발달은 얼마든지 논할 수 있다. 사실은 멀리 동물의 왕국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아마존이나 뉴기니아의 석기시대문명이 미국 유럽 일본 대한민국과 동등하게 발달했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지 순하고 착하다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은, 순하고 착하고 비폭력적인 소, 염소, 양, 돼지, 토끼를 잡아먹지 않는가? 설사, 이 동물들이 억울하다고 외친다한들 안 잡아먹을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착하고 일본은 악하다고 외칠 것인가? 잡아먹히는 착한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잡아먹는 인간이 혹은 잡아먹지 않는 자애로운 인간이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렸다.
그 미개하던 영국, 불란서, 독일 야만족들이 로마를 따라잡더니 급기야 세계과학문명을 선도하고 주도하며 찬란한 인류문명을 건설했다. 거기에 비해 로마의 후예 이탈리아 정치계는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라는 괴물 총리를 배출하며 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일찍이 2,500년 전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출한 서구문명의 기원인 그리스는 부도직전까지 몰리더니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돌고 도는 것이 역사이다.
그러니 지금쯤은 우리 한민족의 시대를 외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문창극 총리후보의 발언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반성적으로 검토하고, 우리의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擧國的인 계획을 세워, 한민족(韓民族) 대굴기(大屈起)를 시작하는 元年으로 삼아야한다.
2014.6.17 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