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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 전선 장거리땅굴434.5Km: 땅굴탐사 33년 총정리 01 (플로로그)
全 전선 장거리땅굴434.5Km: 땅굴탐사 33년 총정리 01 (프로로그)
땅굴전쟁의 책략(예수님포럼, 2013년)에서 예비역 한성주 장군은 이종창 신부를 ‘이 시대의 의병장’ 이라고 지칭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70년대에 제2땅굴을 탐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므로써 국가훈장까지 받은 분이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국민을 전쟁의 참화에서 건지기 위해 당신이 본 남침땅굴의 세계를 줄기차게 제기하며 일생을 바치는 분이 있다. 이 시대의 의병장 이종창 신부이다.”(땅굴전쟁의 책략, 한성주, 2013년, 94쪽). 그러면서 이종창 신부 라는 이 시대의 의병장의 상대는 북한군이 아니라고 단정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그[[이종창 신부]]의 의병장 됨의 상대는 적군인 북한군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국내의 무지하고 게으른 정부당국(국정원장과 국방장관)과 이들의 배후에 숨어있는 음모의 간첩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간첩단의 음모를 무식과 나태로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증언은 땅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게 우리를 인도한다.”(위의책, 위의곳).
나는 겨우 서너 달 전에야 비로서 북괴의 장거리 남침땅굴의 존재를 알았으므로, 그 지식과 경험에 있어서는 어린아이 보다 못하다. 북한이 아니라 북괴라고 지칭한다고 해서 트집잡지 말라. 저들은 지금도 신문방송을 통해서 남조선 괴뢰당국이라고 하지 않는가? 북조선 괴뢰당국의 장거리 남침땅굴에 대해 아는 것은, 그래서, 한성주 예비역 장군이 적절하게 묘사했듯, 39년의 반평생을 오로지 땅굴탐사에 매진하신 이종창 신부님이 남겨놓은 것을 그대로 또는 때론 비판적으로 받아 들임으로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이 남겨놓으신 것들에 새로운 탐사 결과물을 덧붙혀 가야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종창 신부는 북괴의 장거리 남침땅굴 길목을 훤하게 알고 있는 몇 안되는 분들의 아마 「아버지」같은 분이시리라.
다행히 이종창 신부님은 자신의 땅굴탐사 결과물들을 김종환의 참깨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일목요연하게 남겨 놓으셨다(보려면, 클릭!) 몇 군데의 방송에 출연하여 증언하신 내용은 이것의 압축인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참깨방송에서의 증언은 그의 자기 고백서인 동시에 유언집[?]인 땅굴탐사 33년 총정리(20018년, 들숨날숨, 서울)의 내용을 보완한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의 탐사 또는 확인이 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종창 신부님이 지난 33년 동안 탐사하신 땅굴들의 결과물인 ‘땅굴탐사 33년 총정리’를 정독하고 나서, 참깨방송 인터뷰를 보면 북괴 남침땅굴 장거리 음모가 훤히 드러날 것이다. 이종창 신부의 손바닥 안에 장거리 땅굴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 보자.
그보다 먼저 이종창씨는 누구인가? 무엇보다 그는 신부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 책을 1950년대 서울가톨릭대학 교가(6쪽)와 사제서품 때 택한 성경구절(7쪽)과 더불어 시작한다. 물론 그 앞에 ‘전 전선의 땅굴 현황(1/50,000지도에 의함, 1cm = 500m)표가 놓여있기는 하다. 책 표지와 그 교가와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그는 ‘화해의 시대를 열자’ 라는 제목의 서문을 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부수립 60년을 맞는 금년에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나라의 역사가 안으로나 밖으로부터 한스럽고 맺힌 삶을 살아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인생의 해변에도 들물 날물이 발자국을 지운 바닷가 모태톱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운 봄을 맞고 또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삶에 축복이 된다. 화해하여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펼쳐 보이고 싶다.
한반도에 봄이 오리라 믿는다. 언 땅 녹아나고 강마다 맑은 물 흐르고 산과 들에 꽃이 필 것이다. 화해하여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시대가 오리라 믿는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를 용서하소서.’(주기도문 중에서) ”(땅굴탐사33년총정리, 8쪽)
이어 그는 ‘신부가 할일 없어 33년간 땅굴 찾아 시간 보냈나?’ 라는 제목의 발문(跋文)격인 글을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간다. 나는 신부님에게 전재(全載)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 내용을 스캔 이미지로 올리지 아니하고 귀한 시간과 정성들여 직접 내가 내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은 그분의 영혼과 함께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 분과의 통화에서 그 분의 영혼이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꼈다. 남침 땅굴전쟁을 막으려는 것도 다 이 생명들을 위한 것이라 하셨다. 노벨평화상 받을 만한 분의 말씀이다. 또, 글 안에는 글쓴이의 인격이 녹아있다. 그 분의 글을 베껴씀으로 인하여, 난 그 분의 인격(人格) 육화(肉化)를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신부神父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천주교에서 한자로는 이들을 영신의 아버지란 뜻으로 신부神父라고 불렀다. 라틴 말이나 영어나 스페인 말이나 프랑스 말에도 사제를 아버지(Pater, Padre, father)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제의 자녀들이다.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마태7,11)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12,15)
천주교 신부가 무슨 할일 없어 전방 땅굴을 찾아 33년을 최전방 전선을 누비기를, 그리 긴긴 시간을 허비했는가. 스님은 불공 외우고 목탁이나 칠 것이고, 신부는 성당에서 미사나 드리고 고백성사나 세례나 주고 있을 것이지.
나는 임진난 때 승병을 이끌고 왜놈을 방어한 사명대사 장군을 존경한다. 사명대사에 못하지 않게 나도 33년을 정성들여 땅굴을 감시해 왔다. 40Km를 파고 와서 서울의 한 가운데를 공격할 준비를 했고 김포 반도와 의정부, 동두천, 연천, 철원, 화천, 양구 전 전선을 땅 밑으로 길을 내어 한 순간에 대혼란을 일으킬 전투에 긑까지 감시하고 싸웠다.
나는 점쟁이로 제 명예나 유명함을 알리려고 루치펠(대마귀, [[루시퍼]]) 같은 명예심으로 33년을 가짜 신부로 산 사람으로 보기도 할 것이다. 또 그렇게 이상히 보기도 했다.
땅 밑에서 그 멀고 먼 땅굴을 파면서 그 악조건에서 학대를 받으면서 죽어간 북쪽의 내 아들들이나 이남에서는 자신의 명예나 장군의 대우와 정치의 권세에 루치펠[[루시퍼]]의 뿔만 키우는 사람의 마음과는 달리 어버이의 마음, 하느님의 위대하신 정신과 뜻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늘에 와서 사제 된지 50년이 가까이 온 이때에 돌이켜 보면 한 마디 성경 말씀 만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6,9) 사제 된지 50년이 되어가나 하루도 그 본분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오늘까지 기도하고 정성을 모았다. 그러나 나의 나약함을 용서하신 하느님께 찬미드릴 뿐이다.
땅 밑의 땅굴을 훤히 내려다보면서 33년이 되도록 끝을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찾을 곳이 없다. 하느님의 섭리라고 믿을 뿐이다. 한 가지 이유는 처음 땅굴 탐사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최전방을 같이 동행하던 김 장군(육군 정보국 차장)의 말이 오늘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땅 밑에서 공간을 만들어서 파고 오는 땅굴을 훤히 느끼면서 즉시 파괴하고 공격하지 않는 듯한 태도에 크게 불만을 표시하면 그는 느긋이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 저는 6.25 때 사병으로 입대해서 전쟁을 다 치렀습니다. 전방 고지 어디다 하면 산 증인이 될 정도로 압니다. 그렇게 성장해서 장군까지 되었습니다. 전술을 포탄이 수없이 떨어지고 총알이 비 오듯 해도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지휘관이 때를 잘 판단해서 공격 명령을 내리면 일제히 뛰어 나갑니다. 그래서 승리로 이끕니다. 이것이 전술입니다.’ 라고 했다.
오늘까지 마음으로 혼자 고민하고 답답할 때는 오직 전술을 나는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위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전술의 대가이신 하느님 계획 아래서 큰 구원의 밝은 빛을 위해 준비하신 것으로 믿는다.”(땅굴탐사33년총정리, 9~10쪽).
전(全) 전선의 땅굴 총 연장 434.5Km
한겨례 신문 사이트에 올라 온 어떤 글에는 땅굴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괴수로 이종창 신부와 김진철 목사로 지목하고 이 분들을 신랄하게 까 댄다.
좋다. 유언비어라면 이 분들이 지목하는 곳들 모두가 아니라 몇 몇 곳 만을 파 보자. 그리고 나서 만약 진짜 유언비어라면 그리고 그것이 국가 안보에 치명상을 입혔다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하자. 실로, 누가 자유대한민국 국가 안보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는가! 이들을 포함한 우리인가? 아니면 장거리남침땅굴이 없다고 부정하는 국방부인가? 아니면 이러한 부정을 유도하는 좌파종북세력인가! 이종창 신부님은 책 말미에 탐사지점을 GPS(위도와 경도)까지 공개하셨다. 나 역시 이 시리즈 끝에 장거리 땅굴지점의 위도와 경도를 스캔 이미지로 공개할 것이다.
구찌 땅굴의 북위는 10도 58분 00초요 동경은 106도 28분 00초이다. 즉 적도에서 위로-북쪽으로- 10도 올라가서(지구 중심에서 적도로 이어지는 기준 선과 지구 중심에서 구찌 땅굴로 이어지는 선이 북쪽으로 10도 각을 이루고 있다는 뜻),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에서 동쪽 옆으로 106도(지구 중심에서 그리니치로 이어지는 기준 선과 지구중심에서 구찌땅굴로 이어지는 선이 동쪽으로 106도각을 이루고 있다는 뜻) 떨어진 곳, 해발 3M(9피트) 높이의 위치에 구찌 (땅굴)은 놓여 있었다는 말이다. 적화 이후에는 적화 이전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현 호치민) 시를 구성하는 한 구(區)의 이름으로 구찌는 생존하고 있다. 월남과 월맹을 갈라 놓았던 DMZ은 북위 17도 선인 반면 우리의 남북을 갈라놓은 DMZ는 북위 38도 선이다.
이종창 신부님은 남침장거리땅굴망을 통해서 베트콩이 월남 곳곳에 파놓은 장거리땅굴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베트남전쟁기간 동안에 월남과 월맹 곳곳에 파놓은 (장거리) 땅굴망의 총 길이는 무려 3만 마일(4만8천 킬로미터)였다고 하며, 이 중 수백마일이 사이공 북쪽 70여km 떨어진 캄보디아 접경 철의삼각지대에 몰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철의삼각지대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진 것이 구찌땅굴이었고(아래 사진 참조) 그 총연장은 약 250Km 정도였다고 하며, 적화후 공산정권이 관광지한 구찌땅굴에 관련된 길이는 약 200Km정도라고 한다.
이종찬 신부님이 손수 손으로 그리신 전선의 땅굴들 스캔 이미지와 목차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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