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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위구르, 이슬람 국가 꿈꾸며 독립-中에 복속 반복

by anonymous posted Mar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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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40305/61446233/1

신장위구르, 이슬람 국가 꿈꾸며 독립-中에 복속 반복



[동아일보]

신장위구르 아픈 역사

中 강압통치에 반발… ‘피의 복수’ 악순환

쿤밍테러 용의자 전원 사살-체포… 관광지 구이린서도 유사테러 발생


1일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 시에서 발생한 ‘무차별 칼부림 테러’는 위구르족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8명 전원을 사살하거나 체포했다고 3일 중국 공안당국이 밝히면서 일단락되고 있다. 그러나 3일 유명 관광지인 광시좡(廣西壯)족 자치구 구이린(桂林) 시에서도 비슷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6시경 구이린 시 시먼차오(西門橋) 부근에서 위구르족으로 보이는 2명이 지나가던 승용차를 세우고 여성 운전자를 끌어내린 뒤 긴 칼로 찔렀다고 홍콩 밍(明)보가 4일 보도했다. 이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미국에 서버를 둔 화교권 매체 보쉰(博迅)은 다수의 위구르인이 구이린 기차역에서 테러를 벌이려다 사전에 적발되자 달아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전했다.

최근 위구르족이 노리는 대상이 민간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지만 분리 독립 세력의 저항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759년 청나라 건륭제는 서역(西域)으로 불리던 톈산(天山) 산맥 이남의 위구르 지역을 강제로 복속했다. 러시아가 1881년 이 일대를 점령했지만 이듬해 청이 다시 탈환하고 ‘새로운 영토 경계’라는 뜻에서 신장(新疆)으로 명명했다.

1911년 쑨원(孫文)의 신해혁명은 ‘위구르의 봄’을 가져왔다. 하지만 독립운동이 꽃 피기도 전에 한족 군벌들이 신장을 장악하면서 가혹한 민족차별 정책을 펼쳤다. 이들은 이슬람 종교 행위를 금지하고 한족들의 이주를 추진하면서 위구르족을 변방으로 몰아냈다.

1931년 하미(哈密)에서 위구르족의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고 2년 뒤 1933년 인도에서 유학하고 온 사우드 다몰라를 총리로 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공화국’(이슬람공화국)이 설립됐다.

이슬람공화국은 내분으로 이듬해 몰락했다. 하지만 그해 쿠르자 지역에서 2차 봉기가 일어나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이 건립됐다. 주석으로 선출된 알리칸 토레는 “알라는 우리의 신이고 무함마드는 우리의 성자”라며 “피비린내 나는 중국의 깃발은 먼지가 됐고 우리는 이슬람의 초승달과 별이 적힌 깃발을 들었다”고 선언했다.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은 소련의 도움을 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뒤 ‘중소 평화협정’으로 지원이 사라지자 1946년 몰락했다. 1949년 전국을 통일한 중국 공산당은 펑더화이(彭德懷)를 사령관으로 신장군구를 수립해 직접 통치에 나섰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국 전체 석유 매장량의 30%가 묻혀 있는 데다 중앙아시아와 공동경제권을 형성하는 ‘신(新)실크로드 구상’의 관문이기도 하다. 한족 이주정책으로 현재 위구르족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위구르어를 쓰는 상당수 주민은 중국어를 전혀 못한다. 한족과의 불화가 해소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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