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최재천 민주당의원_내가만난물교: 이번 생은 물론 다음 생도 이미 틀렸다

by anonymous posted Jul 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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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http://bulkwang.co.kr/bbs/board.php?bo_t...amp;ho=447
이번 생은 물론 다음 생도 이미 틀렸다

  최재천 2012년 01월 (447)  








지난 여름, 책을 한 권 엮었다. 『최삼현-아버지를 기억하다』인데, 아버님의 육필원고 묶음에 다하지 못한 효도의 기록 ‘불효기不孝記’를 더했다. 14년 전 가을, 아버님 위패를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에 모셨다. 청개구리의 마지막 효심이었으리라. 사법연수원 시절,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을 위해 여행 계획을 잡았다. 자동차를 빌렸다. 운전면허조차 없었는데 운전병으로 갓 제대한 후배가 운전을 도와주었다. 이곳저곳을 거쳐 순천 송광사에 들리게 됐다.
온전히 아버님의 뜻이었다.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니 어느덧 해질 무렵. 절 마당 한 편에는 기와불사가 한창이었다. 지금도 흔히 만날 수 있는, 기왓장 뒷면에 하얀 매직으로 주소와 이름을 쓰고 공덕을 쌓는 그런 방식. 아버님께선 그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순간 귀찮았다. 다음 일정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제가 알아서 하겠다며 그냥 휠체어를 밀어 절집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물론 아버님에 대한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때 기와불사에 동참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셨다. 그때쯤 돌아가실 준비를 하셨던 걸까. 모르는 새 피안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계셨던 것일까. 간간이 말씀하셨다. “나는 불교가 편하다.”그게 인연이었을 게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1박 2일짜리 수학여행이 있었다. 목적지는 10여 년 전 후로 똑같았다. 고향에서 불과 수km 떨어진 해남 대흥사. 익숙했던 일상을 떠난 첫 여행이었다. 대흥사에 들어서는 길목, 화려한 단풍들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깊은 산 속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깊고 깊은 산 속, 길吉하고 길한 곳에 절집이 있고 아름답고 화려한 그 곳에 석가모니부처님과 1,000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찬란한 만남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경이로움 그 자체는 모든 것이 결코 둘이 아니었다는 것. 그해 가을과 두륜산과 대흥사와 부처님과 절집 스님들과 코흘리개 아이들은 그저 하나였다. 서로는 서로에게 풍경이었고 서로는 서로에게 존재의 뿌리였다. 서로는 서로에게 아름다움이었고 서로는 서로에게 인연이었다. 세상이 있어 부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그렇게 천상으로 울려 퍼졌다. 장엄한 화엄의 세상은 그해 가을 남녘땅 대흥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남이 세상이 되었지만 불법을 만나기는 역시나 지난한 일이었다. 수년 뒤 해남을 떠나 광주 유학길에 올랐다. 중학교 때 영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광주로 전근 와 계셨다. 선생님 댁에 자주 들렀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 스님의『무소유』를 건네주셨다. 읽고 또 읽었다. 아침에도 읽고 밤에도 읽었다. 세계관, 종교관이 그곳에 있는 줄 대충 짐작하게 됐다. 다만 편했다. 그 안에 앉아 있으면 잃어버린 나를 만난 것처럼 그저 평안했다. 한때는 출가를 결심하고 스님들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사춘기적 치기였다. 나이 들어가며 부처님 말씀을 담은 책들을 읽어나갔지만 이 또한 내면에 대한 변명거리였을 뿐.
마음공부를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공부를 꼭 쥐어본 적은 없었다. 인과의 도리를 불신했던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인과의 믿음 앞에 온전히 드러내 보인 적도 없었다.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불교적 부채의식에 시달렸지만 그렇다고 나 이외 다른 이를 위해 마음 한번 내어본 적 없다. 그저 현실을 믿음 삼아, 지극히 세속적 삶을 마음의 근본으로 내어주고 살았다.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의 삶에 집착했다. 야보冶父선사의 경책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련하다 차마의 객이여, 문밖의 그대는 남의 일로 분망하구나(可憐車馬客門外任他忙).” 그저 부처님의 한없는 자비심에 기댈 뿐. 속세의 습習은 여전하다. 뒤늦게 발분하여 만나는 기왓장마다 이름을 써대지만 이 또한 대가를 구하는 세속적 계약 개념의 산물일 뿐.

최재천
17 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현재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한국외교의 새로운 도전과 희망』,『 최재천의 여의도 일기』,『 최재천의 한미FTA 청문회』,『 최재천의책갈피』,『 위험한권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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